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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작가소개

임노식 / 2022년 20회

임노식

lsn2s2@naver.com

2017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 졸업
2015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23    긴 이야기 Unfolded,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20    Sand from Somewhere Else,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 인천

2020    《Pebble Skipping, Art Space Boan 02, 서울

2017    Folded Time, 합정지구, 서울

2016    안에서 본 풍경, OCI미술관, 서울



주요 단체전

2023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일민미술관, 서울

2022    FINDING SCALE, Gallert IAH, 서울

2022    《아아! 동양화 : 열린문,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파주

2022    울산 현대미술제 시작부터 지금, 가다갤러리, 울산

2022    보안1942 × 로컬스티치 ART REBUILD, Art Space Boan 01, 서울

2022    《HOW THEY WORK, 에브리아트, 서울

2022    《송수민, 임노식 : 비워낸 풍경, 아트스페이스 영, 서울

2021    현시적 전경, 단원미술관, 안산

2021    《페리지 윈터쇼 2021, 페리지갤러리, 서울

2021    《오늘의 감상, 금천예술공장 PS333, 서울

2021    《P는 그림을 걸었다, d/p, 서울

2021    《이병호, 임노식: 캐스트 CAST, d/p, 서울

2021    《푸른 유리구슬 소리: 인류세 시대를 애도하기,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1    《Flowers, 뮤지엄헤드, 서울

2020    여행하는 예술가의 가방 The Show Must Go On,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

레지던시

2021    금천예술공장, 서울문화재단, 서울

2020    인천아트플랫폼, 인천문화재단, 인천

2019    ARKO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

2019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수상 및 선정
2018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선정, 퍼블릭아트

2016    경기 신진 작가 작품 공모 선정, 경기도미술관

2015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전시 설명]
​깊은 선 Deep Line

작가 임노식은 낯선 시점으로 바라본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회화에 담아낸다. 이번 전시 《깊은 선 Deep Line》 에서는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인 여주의 모래산과 돌, 나무에 대한 관찰과 기억,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전달받은 풍경에 대한 묘사를 종합해 구축한 이미지를 선보인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수집된 이야기를 회화로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작가는 여러 기법을 시도한다. 거리두기와 지우기, 분석하기, 긁어내기, 추가하기, 버리기, 끌고가기, 인식하기, 비우기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기억 속의 불확실한 이미지는 확실한 선으로 축약된다.

작가는 판화와 유사한 기법을 활용해 선을 따라 화면을 파내고 그 자리에 물감을 메운 후 다시 평면화시킨다. 이를 통해 선은 화면 위에서 최소한의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최대한의 깊이감을 가지게 된다. 선 밖의 여백은 비워지고 버려진 이미지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내포한다. 프레임 안에 매달려 있는 선 덩어리들은 주변을 맴도는 허공까지 여백으로 흡수하면서 공간을 깊이 있게 점유한다. 이렇게 평면과 공간에 그려진 함축적인 선들은 수집된 이미지로부터 원천을 추출해 화면으로 옮기는 작가만의 시각화 방식을 보여준다.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연약한 표면과 깊은 선 Shimmering surface and Deep line

- 노한수

연약한 표면에 선을 새기는 일은 바다에 항로를 만드는 행위와 유사하다. 임노식은 고정된 화면과 절대좌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뒤엉키는 표면 위에서 대상들의 상대적인 관계들을 기록한다. 기록들이 재료가 되어 쌓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견고함을 얻게 되면 일렁이는 바탕 위에서도 완결성을 지니는 체계를 확립한다. 하나의 좌표계가 된 덩어리와 마주한 그는 그것이 지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특성에서 벗어난다. 시선은 이제 무르고 불확실한 면을 자유로이 거닐 수 있게 하는 기능적인 탐구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표면 위에선 자연에 대한 질투나 완벽을 추구하는 태도, 재현과 기록을 위한 시도들과 흠결도 어느 순간 무화된다. 작가는 흔들리고 요동치는 표면 위에 선을 놓는다. 흐르는 표면에서 선은 새겨진 순간부터 본질에서 멀어져 닿지 않는다. 작업에서 보편적인 개념의 재현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기록된 관계만이 깊게 남는다.

작가는 재현의 대상과 처음 마주한 감정을 상기하며 이내 기억을 평면으로 옮기려 할 때 떠오르는 모호함과 마주한다. 멈춰진 기억과는 달리 풍경과 대상이 끊임없이 흐르고 진동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것은 질투나 시기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것으로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것을 갈구하는 결여의 감정임을 인정한다. 가상이나 연출된 세계가 아닌 현실에서 정확한 곳을 짚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범위를 좁히더라도 그만큼의 무한대가 다시 더해진다. 존재하는 것을 쌓아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완벽히 만들 수는 없다. 현실의 구축물은 시작부터 완결까지 좌표를 선택할 수 없고 영역의 소거만이 가능하다. 작가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범위에서 명확히 불가능한 것들을 지워간다. 자신이 보았던 것과 기억이 정박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기록하는 행위에 집중한다.

자유로운 평면 위에 관습적인 구도와 색채를 지운다. 기존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임노식은 이전 개인전 《Pebble skipping》 이후부터 표현과 화면에서 드러나는 특정한 의도들을 지우고 주제와 대상이 지닌 맥락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회화의 시작점으로 돌아와 새로운 원점을 설정하며 일련의 작업을 전개한다. 구성이나 구도, 형태와 색채를 가늠할 수 없게 파편화시키며 평면이 내포한 우연성을 배제하기 위해 선의 불확실성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벼리는 일련의 선은 보편적 의미의 선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선은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의 역할보다 배제할 수 없는 최소한의 것만을 표시한 기호에 가깝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실현하려면 각기 다른 체계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더욱이 시도되지 않은 형태나 표현은 이전의 체계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체계를 다듬는 일부터 시작한다. 좌표가 시작될 원점을 규정하기 위해 최소한의 근거를 맥락(context)에서 찾는다. 그것은 관찰의 대상에서 추출되기도 하고, 선이 놓일 면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새로운 원점으로부터 퍼져나간 선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닫힌계(closed system)를 형성하게 되면 이전의 원점과 절대적인 좌표는 체계에서 떨어진 바탕이 된다. 선들은 상대적인 치수와 거리만으로 덩어리를 구성하며 체계의 범위 안에서만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임노식은 〈Green Line〉 연작에서 선을 새기는 행위에 몰두한다. 작가는 최소한의 벽으로 최대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건축가의 욕망처럼 최소의 너비로 최대한 깊은 선을 구현하려 애쓴다. 평면에 머무르는 선이 깊이를 가지기 위해서 새기고 메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재생산되는 선은 자신의 면적을 줄이는 만큼 깊이감을 더해간다. 비로소 선은 같은 무게감을 유지하면서 평면에서의 자유로움을 획득한다. 비워진 여백만큼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사건이 발생할 여지를 만든다. 뚜렷하게 남은 마지막 선은 이전 것들이 가지고 있던 과정과 결과들을 삼킨(cannibalistic) 선이다.

〈Green Line〉은 주제로 작동되지 않는 풍경에 대한 추출에서 시작된다. 풍경은 묘사의 대상이나 표현의 목적이 아닌 하나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새겨진 선들은 닫힌 하나의 공간을 구축하려 애쓴다. 선은 오차를 줄이고 틈을 메우고자 하는 욕망이 작동하는 경계선이 된다. 닫힌 영역을 규정하는 행위를 통해 선이 지닐 수 있는 견고함을 완성한다. 동선과 치수를 다루는 도면 위의 선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사건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새겨진 선도 가능성만을 내포한다. 높은 확률의 것만 골라 가중치를 부여하고 명확성을 지탱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작가의 화면에는 실상 의미 있는 주체들이 그려지지 않는다.

선들이 중첩되어 덩어리로 드러나는 프레임 형태의 작업은 대상의 윤곽을 취했다기보다는 추적할 수 있는 범위를 산정한 것에 가깝다. 입체적으로 보이는 면은 영역이 아우르는 여러 각도에서 취한 파편화된 모습들이다. 한 번에 담을 수 없는 평면과 단면의 켜를 쌓아 만든 덩어리다. 표류하는 배와 같은 덩어리들을 연유 모를 프레임이 붙잡아 놓는다. 사각형의 내부는 특정한 규모를 규정하지 않는다. 잠김이 풀린다면 언제든 지점으로 날아가 버리는 잔상과도 같은 화면들이 각기 다른 축척으로 모여있다. 작가는 사건과 시점의 구체성보다 기록하는 행위 자체와 사건의 연결점에 중점을 둔다. 거시적인 관점과 태도를 통해 우연성을 배제하고 시공간에서 벗어나 명확성과 보편성에 다다르기를 시도한다.

구조적인 강성을 가진 것 위에 우연성이 새겨질 수 없다. 물리적으로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통제하지 못하는 오차의 한계 혹은 어쩌면 통제할 필요가 없는 중요도에 따른 분류를 상정한 유희적인 표현일지 모른다. 철과 돌의 표면에 새겨지는 것과 연약한 천의 표면 위에 새겨지는 선이 다르듯 어디에 새겨지느냐에 따라 선이 가지는 힘과 특성이 달라진다. 작가는 대상과 배경이 지닌 연약한 표면을 그대로 두고 선이 구조이자 마감이 되는 망을 만든다. 밀도 높게 쌓아 올리며 압축하는 건축의 행위가 평면 위에서 행해진다. 비교적 명확한 대상이나 사건에서 출발한 선들은 서로 간의 우열 관계를 정하고 주변에서 주장과 근거를 모아 대표되는 선을 선출한다. 마땅히 선택되어야 할 것처럼 보이는 그 선은 배경과 맥락에 얽혀있지만, 작가는 그것을 맹신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선출된 선이 아닌 개체들의 관계성에 집중하여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한 선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