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지원
jiwonchoi015@gmail.com
2022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석사 졸업
2019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26 《글레이즈드 피버》, 금호미술관, 서울
2025 《Following the Curves》, 베저할레, 베를린, 독일
2024 《멈춰버린 순간》, 박서보재단, 서울
2023 《채집된 방》, 디스위켄드룸, 서울
2020 《차가운 불꽃》, 디스위켄드룸, 서울
주요 그룹전
2024 《Stemming from Umwelt》, 탕 컨템포러리 아트, 베이징, 중국
2024 《2024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K&L MUSEUM, 과천
2024 《Inter-frame》, 백스테이지, 상하이, 중국
2023 《自我 아래 기억, 自我 위 꿈》,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3 《Future Solos 2》, 베저할레, 베를린, 독일
2022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 경기도미술관, 서울
2022 《사유의 베일》, 일우스페이스, 서울
2021 《매니폴드: 사용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21 《0인칭의 자리》, 디스위켄드룸, 서울
2021 《연기와 연기》, 상업화랑, 서울
2021 《매니폴드: 사용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수상 및 선정
2026 제23회 금호영아티스트 선정, 금호미술관
2024 키아프 하이라이트 어워드, 키아프
2022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퍼블릭아트
[전시 설명]
글레이즈드 피버 Glazed Fever
작가 최지원(b. 1996)은 매끄럽고 장식적인 사물에 주목해 긴장감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면을 그린다. 그는 19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인형(China Doll)을 이질적인 맥락 안에 배치하여 낯선 조형적 대상으로 변모시킨다. 고전적인 얼굴과 현대적인 의복, 입체적인 명암과 평면적인 색면, 동양의 기물과 서구의 사물, 살아있는 것과 박제된 것 등 상반되는 요소들이 화면 위에 공존하며 긴장감을 더하고, 매섭도록 정교하게 묘사된 표면은 사물을 눈으로 더듬는 듯한 촉감을 자극한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도자기라는 사물에 현대적인 외양을 덧입히려 시도하기보다는, 사물의 형태와 표면을 매개로 그 안에 응축된 서사를 가시화하려 한다.
이번 전시 《글레이즈드 피버》에서 작가는 인형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 화면을 압도하는 스케일로 제시하며 단단한 표면 아래 잠복해있던 열감을 끌어올린다. 글레이즈드(glazed)는 윤이 나는 도자기의 질감을 묘사하는 동시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인형의 멍한 표정을 가리킨다. 테라코타 빛으로 물든 인형의 얼굴은 뜨거운 열을 통과한 뒤 굳어지는 도자기 본연의 물성을 연상시키며, 차갑게 식어 있던 존재가 다시 열기(fever)를 마주한 상태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 열기를 물리적 온도에 국한하지 않고,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온도로 확장한다. 화면을 가득 메운 난초에는 그러한 욕망의 역사가 담겨 있다. 여기서 작가는 19세기 영국에서 나타난 ‘난초 열병(Orchid Fever)'을 참조한다. 식민지에서 온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식물은 빅토리아 시대의 수집가와 탐험가들에게 수집 광풍을 불러일으켰으나, 난초 수집과 연구는 대개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여성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역사 위에서 여성이 난초를 소유하고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난초 앞에서 붉어진 인형의 얼굴은 억제되었던 욕망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한다. 먼 이국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수집의 대상이 되었던 도자기 인형과 난초가 화면 속에 나란히 놓이며 서로를 응시하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아름다움과 욕망,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소유하려는 시선의 역사를 함께 마주한다.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비평 - 시선이 머무르는 반짝임에 관하여: 최지나
최지원의 회화는 언제나 표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단순히 보이는 대상들의 외관을 넘어, 시선이 머물며 미끄러지고, 다시 되돌아오는 감각의 장(場)에 관한 탐구이다. 우리의 시선은 빛을 머금은 채 응축된 표면을 응시한다. 작가는 도자기 인형이라는 차갑고 매끈한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호출해 왔다. 과거에서 소환된 친근하지만 낯선 모습. 고온의 열기를 견딘 뒤 차갑게 식어버린 무감각한 존재. 견고하지만 금방 깨져버릴 수 있는 예민한 존재성. 결점 없는 피부의 반짝이는 광택은 생명성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지점이자 최지원의 회화 충동이 발생하는 출발점이다.
이번 전시 《Glazed Fever》는 그간 지속해온 <색온도(Color Temperature)> 시리즈의 확장이자 심화다. 그동안 작가는 초점 없는 인형들로 장면을 연출하고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의 상태를 표현해 왔다. 최근 작업은 ‘Fever'의 의미를 ‘열' ‘발열'의 차원을 넘어, 흙이 열 속에서 소성되어 형상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주목하며 생명과 무생물 사이의 존재론적 경계와 지각의 층위를 사유한다. 나아가 붉은 색채를 통해 감정의 강도와 극단으로 치달은 마비된 감각을 가시화한다. 크게 확대된 대상들은 화면을 압도하며, 마치 얼굴 가까이에서 어떤 존재와 마주한 듯한 신체적 긴장을 환기한다. ‘열기'가 가득한 공간에는 ‘광택'으로 반짝거리며 붉게 상기된 초점 없는 도자 인형들이 자리하고, 그 배경에는 난초와 식물, 액자, 거울,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다. 익숙한 줄무늬 셔츠는 인간의 몸을 환유하며 친숙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과열된 색채와 대상들의 극사실적인 묘사, 그리고 화면을 가득 채운 구성은 묘한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긴장 속에서 매끈한 표면은 관람자의 시선을 붙잡으며 만지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도자기 인형의 광택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촉각적 감각을 불러낸다.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사실적 묘사는 강한 실재감을 형성하며 조각적 요소를 회화로 전이한다. 조각에서 연마된 표면이 빛을 반사하며 촉각적 환영을 만들어내듯, 최지원의 회화에서도 빛과 질감은 시각을 통해 촉각을 환기한다. 이때 색채는 입체감을 위한 음영이라기보다 매끈한 질감을 재현하기 위한 그라데이션으로 기능한다. 완전한 환영을 일으키기 위해 그의 붓질은 같은 지점을 수없이 얇게 반복하며 색의 레이어를 쌓아 간다. 형태를 빚어내는 이 집요한 회화적 과정 속에서 시각적 일루전은 자연스럽게 발생하지만, 끝내 닿을 수 없는 표면은 촉각적 시각성의 좌절을 남긴다. 역사적으로 매끈하게 연마된 표면은 완성도를 드러내는 징후이자 생명성과 숭고, 욕망을 호출하는 기호였다. 최지원의 회화에서도 반짝임은 사물에 생기를 부여하는 장치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짝임이 과잉에 이를 때, 지나치게 매끈한 세계와 결함이 제거된 물질 상태는 오히려 감각을 마비시킨다. ‘Glazed'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그것은 윤이 나는 동시에 멍해진 상태를 가리킨다. 감각을 되살리려 할수록 오히려 저릿하게 무뎌지는 역설 속에서 생과 무감각, 욕망과 마비의 경계가 드러난다.
마비에 가까운 무뎌짐 속에서 시선은 하이퍼리얼한 이미지 위를 미끄러지듯 배회한다. 도자기 인형과 난초, 액자와 같은 사물들은 인터넷에서 수집된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편집한 파생 이미지들이다. 서로 다른 출처에서 콜라주된 화면은 깊이를 지닌 공간이라기보다, 여러 레이어가 납작하게 포개진 평면에 가깝다.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표면은 실재감을 과잉시키지만, 그 실재는 끝내 부재한다.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어긋남, 사물들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접합이 감지되는 순간, 이 장면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조합된 이미지들의 배열로 이루어진 파생 공간임이 드러난다. 이때 화면은 실재 없이 작동하는 시뮬라크르의 장으로 전환한다. 과잉된 감각은 실재를 향해 욕망하지만 도달하는 것은 끝내 무력화된 허구적 표면이다.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시각 환경 속에서 지각은 내적 충동과 맞닿는다. 파생된 이미지는 결국 욕망의 기호적 투영이다. 작가는 난초라는 모티프를 통해서도 숨겨진 욕망을 환기하는 기호 장치를 구축해왔다.
난초는 욕망에 관한 서사를 드러낸다. 19세기 유럽을 휩쓴 ‘난초 열병(Orchidelirium)'은 관능적인 형상과 색의 이국적인 매혹을 지닌 난초를 수집하고 소유하려는 집착적 현상이었다. 최지원은 그 현상의 기호들을 ‘난초 열병(Orchid Fever)'으로 번역했다. 난초는 도자기 인형과 중첩되거나, 액자 속에서 확대된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매혹과 욕망을 상징하는 난초꽃의 생기는 실재 살아 있는 듯한 또 하나의 반짝임을 발생시킨다. 마주한 꽃들은 수집 충동을 자극하며, 세계를 발견하고 소유하려는 욕망과 맞닿는다. 최지원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 탐험가이자 화가 마리안 노스(Marianne North)가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식물 800여 점을 그려서 마리안 노스 갤러리(Marianne North Gallery)를 채운 사실에 주목하는데, 이는 낯선 자연을 발견하고 세계를 시각적으로 소유하려 했던 근대적 욕망의 한 단면과 연결된다. 발터 벤야민은 수집 행위가 사물을 원본 맥락에서 분리하여 새로운 관계망에서 배열하며 세계를 재조직하는 사유의 방식으로 봤다. 최지원은 이러한 수집의 논리들을 동시대의 이미지 환경 속에서 더욱 강화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반짝이는 대상들을 수집하고 새로운 질서로 재배치한다. 컬렉션된 기호들은 화면 위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며 서로 다른 시간과 맥락을 뒤섞는다.
사물의 기호들은 서사를 따라 전개되기보다 하나의 장면처럼 정지된 채 제시된다. 사진에서 파생된 이미지들의 재구성은 프레이밍을 강화하며 시선을 화면 안에 붙잡는다.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듯 화면을 응시하던 시선은 문득 매끈하지만 초점 없이 미묘하게 굳은 인형의 표정에 머문다. 바로 그 순간 롤랑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punctum)'이 발생한다. 그것은 의도된 의미나 서사를 넘어 관객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찌르는 어떤 요소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무감각한 표정과 반사된 환영의 얼굴들은 긴장을 증폭시키며 시선의 흐름을 중단하는데, 이 지점에서 억눌린 욕망과 충동이 문득 희미하게 떠오른다. 푼크툼은 매끈한 표면과 욕망의 사물들, 그리고 거울과 도자기 표면에 반사된 형상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균열로 작동한다.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반짝임은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조용히 일깨우는 멜랑콜리한 순간의 징후이기도 하다.
결국 이 반짝임은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실체 없는 이미지의 광택에 이끌리며, 닿을 수 없는 표면 앞에서 머무는 우리의 시선은 무엇을 갈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빛나는 표면의 향연이 아니다. 완벽하게 코팅된 광택의 이면에는 열기와 차가움, 욕망과 마비, 생명과 죽음의 충동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 작가는 감각이 무뎌지는 바로 그 순간, 오히려 가장 강렬한 생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의 회화에서 반짝임은 눈을 현혹시키는 장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시선을 붙들어 세우고 우리가 보고 느끼는 지각의 조건을 다시 묻게 만드는 하나의 미학적 장치다. 완전하게 구축된 이미지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동시대 회화가 감각과 욕망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를 밀도 있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래도록, 우리의 시선에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