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원미
wwonmi919@gmail.com
2017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학사 졸업
주요 개인전
2026 《대극장 Grand Theater》, 금호미술관, 서울
2023 《말 없는 말》, 아터테인, 서울
2023 《카우보이 휘슬》, 라흰갤러리, 서울
2022 《당신이 말을 멈추면》, 파이프갤러리, 서울
2019 《블랙 커튼》, 아트비트갤러리, 서울
2017 《Facing》, 보안여관, 서울
주요 그룹전
2025 《Yoo & Mi》, 갤러리2 중성농원, 제주
2025 《Bon Appetite! Eating Echoes with Salt air》, 아르떼케이, 서울
2024 《회화와 삶이 춤추는 시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서울
2023 《Total Support 2023》, 토탈미술관, 서울
2023 《AP6: SIGN》, 미메시스아트뮤지엄, 파주
2022 《Hi-story.gif》, 자하미술관, 서울
2021 《하나의 점 모든 장소》, 금호미술관, 서울
2020 《제7회 종근당 예술지상》,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서울
2020 《또 다른 밤》, 금호미술관, 서울
2019 《International Biennial Portrait Competition》, Wausau Museum of
2019 Contemporary Art, 위스콘신, 미국
2019 《영 앤 영》, 영은미술관, 서울
레지던시
2019-21 금호창작스튜디오 15기 입주작가
수상 및 선정
2026 제23회 금호영아티스트 선정, 금호미술관
2019 Wausau Museum of Contemporary Art (IBPC) 선정작가
2018 종근당 예술지상 수상
2018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지원 선정
2017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 선정
[전시 설명]
대극장 Grand Theater
작가 서원미(b.1990)는 추상과 구상 사이를 오가는 회화를 통해 개인의 서사와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그의 작업은 죽음, 불안, 트라우마와 같은 근원적 감정을 응시하는 행위를 중심에 두며,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사회·역사적 사건으로 확장되었다가 다시 내면으로 회귀하는 회화적 여정을 보여준다. 그동안 작가는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둔 장면들—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화면으로 옮기며 작업을 전개해 왔다. 그는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아 점차 사회적 사건으로 시선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Facing>(2012-2016)과 <The Black Curtain>(2016-2019) 연작을 선보이며 미완의 문제의식을 밀도 있게 파고들었다. 이 시기 작업이 비교적 고전적인 재현의 형식 위에서 감정과 서사를 응축해 보였다면, <Carnival Head>(2021)에 이르러 그 형식은 스스로 해체되며 작가의 내밀한 사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화면으로 전환된다.
이번 전시 《대극장 Grand Theater》에서 작가는 이러한 전환 이후 다시 내면으로 향하는 과정에 놓인 작업들을 선보인다. 그는 작업실을 오가는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들로부터 과거-현재-미래가 맞물리는 시간성,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삶이 서로 순환한다는 감각을 포착하고 이를 현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미시적인 장면으로 전환한다. 전시는 ‘낮'과 ‘밤'이라는 두 무대로 구성된다. 낮의 무대가 외부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양상을 드러낸다면, 밤의 무대는 내면으로 회귀한 작가의 심리적 풍경을 표상한다. 바깥 전시실은 외부 세계의 서사가 촘촘히 쌓인 낮의 무대로 구성되어 밀도 높은 공간감을 형성한다. 반면 안쪽 전시실은 사적 감각이 확장되는 밤의 무대로 제시되며, 순환하는 시간의 리듬 속에서 보다 느슨하고 열린 공간으로 작동한다. 두 무대는 동일한 하루의 양면이자 각각의 세계가 교차하는 구조로서 ‘사건' 중심에서 ‘감각' 중심으로 옮겨간 작가의 변화된 태도를 드러낸다. 서사로 이어지는 시간과 순환하는 리듬의 시간, 외부의 사건과 정서적 감응이 맞물리며 형성되는 긴장의 구도는 축적된 이야기의 흐름이 감각의 영역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비평 - 낮과 밤, 그리고 또 다른 밤에 이르는 각본: 하도경
프롤로그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여기서 ‘같은'이라는 형용사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길은 같지만 풍경은 매번 다르고, 계절은 돌아오지만 그 돌아옴은 언제나 처음처럼 느껴진다. 같을 수 없는 길을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어리석다. 반복 속에서 매번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 새로움 속에서 반복을 감지하는 것. 이 어긋남은 시간을 사는 일의 본질이다. 서원미는 이 어리석음 안으로 들어가 본다.
1장
그는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들을 그려왔다.
뼈와 가죽만 남은 육체들, 전쟁과 분단이 남긴 역사적 트라우마와 축제적 가면을 쓴 현대 불안의 파편들. 그가 매개한 죽음의 그림자들은 의미와 내용의 차원에서 비교적 읽힐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것들은 해석을 통해 위치 지어질 수 있었고, 세계 안에서 어떤 자리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말과 카우보이가 등장했다. 말을 타고 숨바꼭질하며 이미지를 찾아내는 일이 시작된 거다. ‘말'이 언어와 동물을 동시에 지칭하듯, 작가는 언어와 이미지가 하나였던 시간으로 질주했다. 당도한 곳은 동굴 깊숙한 곳, 횃불을 휘두르면 움직이는 듯 보이는 이미지들이었다. 이미지를 찾아 나선 포획의 여정은 계속됐고, 그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자신 안에 놓여있었다. 그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미 ‘여기'에 있는 것과 마주했다.
막간
빛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회화는 쌓였다 지워지고, 다시 덧칠되며, 그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 작가의 화면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이 시간들의 동시 존재다. 물감이 스며든 층, 뭉개진 자국, 그 위를 가로지르는 선, 흐려지는 순간들. 어느 것도 앞서지도 뒤받치지도 않는다. 과정은 결과 안에 포개져 있다.
작가는 미리 정해진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반복하다가 회화가 요구하는 지점에서 멈춘다. 완성은 계획의 실행이 아닌 발견이다. 그 지점을 결정하는 것은 물감의 질감, 색의 관계, 형태의 균형 같은 회화 내부의 조건들이다. 회화는 작가에게 말을 건다. 작가는 그 방향에 자신을 맡긴다.
농도를 조절하며 세세하게 말하다가, 기름을 섞어 천천히 마르게도 한다. 눈을 감아본다.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햇빛의 노르스름함을 더듬어본다. 이때 시각은 촉각이 되고, 빛은 온도가 된다. 물감의 농도, 기름의 양, 마르는 시간은 기법이 아니라 시간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형태가 되기 직전, 흐려지기 직전에서 멈춘 화면은 여전히 과정 중인 것처럼 보인다. 일렁이는 것과 고정된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서 목소리는 달라진다. 이야기를 멈추지 않던 회화는 점점 옅어지고, 머뭇거리고, 언어를 내려놓는다.
2장
밤과 계절들.
모든 것이 밤 속으로 사라졌을 때, 사라졌다는 사실만이 남는 또 다른 밤이 열린다. 또 다른 밤은 대상의 부재가 아닌, 부재 자체의 현존이다. 작품이 무언가를 지시하려다 멈춘 지점,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채 지속되는 상태다. 그리하여 밤은 어둠이라기보다, 의미가 더 이상 앞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에 가깝다. 여기서 계절은 머무름의 형식이 된다. 그것들은 설명되기보다 지속되고, 이해되기보다 반복된다.
같은 크기의 네 화면에는 상반된 감각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고, 뜨거운 것은 차갑게 식어 있으며, 어리석어 보이는 것은 멋지게 남아 있다. 이 모순들은 해소되지 않으며, 오히려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이거나, 이미 분리의 필요를 잃은 이후의 상태로 화면 안에 머문다. 회화는 이 상태를 정리하지 않고, 충분히 지속되도록 멈춰 세운다.
작업은 완성을 향해 나가기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서 스스로를 늦춘다. 화면은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 중단 자체가 하나의 형식이 된다. 말은 남아 있지만 도달하지 못하고, 의미는 생성되지만 확정되지 않는다. 서원미의 회화는 이 도달 불가능한 상태를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견디는 쪽을 선택한다.
이 지점에서 작가의 위치 또한 달라진다: 이미지가 스스로 머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 화면은 작가의 의도를 실행하지 않고, 작가를 자신의 시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완성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발생한다.
작가가 그려낸 계절들은 서사가 아니다. 네 개의 화면은 닫힌 이야기 대신 열린 순환을 이룬다. 이 순환 안에서 시간은 이미 지나간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은 이미 도착해 있는 것처럼 작동한다.
서원미는 예술이 작동하는 또 다른 조건을 드러낸다. 사라짐과 멈춤, 반복과 미완의 상태를 허용하는 일이다. 회화들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말이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또 다른 밤의 시간 안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리고 그 초대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화면은 여전히 열려 있고, 순환은 계속된다. 예술은 이 멈춤 속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을 지속시킨다.
에필로그
매일 걷는 길은 어떻게 ‘대극장'이 되는가. 여기서 대극장은 크기보다 상태에 가깝다. 시간이 펼쳐지는 장소이자, 머무름이 허용되는 공간이다.
이미지는 넘쳐나고 회화적 요소들은 어디에나 있다. 수많은 시각 언어들이 회화의 표면을 빠르게 차용한다. 이 환경 속에서 회화를 지속한다는 것은 매체적 순수를 주장하는 일이라기보다, 회화가 요구하는 느림과 지연, 반복과 미완을 놓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목소리가 작아질수록 화면은 더 오래 남는다. 관객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주체가 아니라, 말이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이 밤의 시간 안에 잠시 머무는 존재가 된다. 이 회화들은 완성되었지만 끝나지 않았고, 말하고 있지만 확정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멈춤과 순환 속에서 스스로를 지속시킨다.
우리는 본다. 반복 속에서, 매번 새로 도착하는 시간을. 어리석기에 멋지고, 환상이지만 아름다운 삶의 형식을. 매번 걷고, 매번 멈추며, 매번 밤을 통과하는 내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