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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작가소개

박현진 / 2025년 23회

박현진
hjingarden@gmail.com

2025    코넬대학교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아트 석사 졸업

2017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석사 졸업

2014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26    에코 트랙스, 금호미술관, 서울

2025    사자도, 개도, 사람도 아닌 것, 오픈스페이스 배, 부산

2025    I(A)MPATIEN(T/S), 챔버, 서울

2025    Bones Between Air, Tjaden Gallery, 뉴욕, 미국

2022    해피 벌룬 데이, 의외의 조합, 서울

 

 

주요 그룹전

2025    Cross Crossings to Cross,나스파운데이션, 뉴욕, 미국

2025    《Two Ends of One, the MACRO project, 뉴욕, 미국

2025    《Even the Phrase Each Other, OyG project, 뉴욕, 미국

2024    Will-o'-the-wisp, Tjaden Gallery, 뉴욕, 미국

2023    리니, 온수공간, 서울

2022    링킹 프로젝트껍데기와 박동, 서교아트센터, 서울, 한국

2020    1,1 , Work, Work, 중간지점, 서울

2019    Seoul Times, Hui Gallery, 사톈, 홍콩

2018    장르 알레고리-조각적, 토탈미술관, 서울

 

 

주요 수상 및 선정

2026    23회 금호영아티스트 선정, 금호미술관

2026    Wave Hill Sunroom Project 지원 작가 선정, 뉴욕, 미국

2025    AHL T&W Contemporary Visual Artists Award, 뉴욕, 미국

2024    영민 해외 레지던시 지원 프로그램 선정, 한화문화재단

2022    아티스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선정, 오픈스페이스배

 

 

주요 레지던시

2025    NARS 파운데이션, 브루클린, 미국

2025    워터밀센터, 뉴욕, 미국

2024    Domaine de Boisbuchet, 레삭, 프랑스

[전시 설명]
에코 트랙스 Echo Tracks



작가 박현진(b. 1991)은 인간과 동물, 식물, 기계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탐구를 다양한 매체로 선보인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반려견 뽀뽀'의 죽음 이후에도 잔존하는 기억과 감정, 관계에 대한 사유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부재하는 개를 상상의 존재로 치환한 퍼포먼스 <사자도, 개도, 사람도 아닌 것>(2022), 웅크린 동물 형상의 화분에 봉선화를 기르며 애도의 시간을 담은 <I(A)MPATIEN(T/S)>(2023-), 개의 두개골에 새로운 몸을 부여한 조각 <케르베로스의 세 개의 몸>(2024) 같은 작업은 물리적 형상이 사라져도 다른 형태로 지속되는 존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근 작가는 소니의 인공지능 로봇 개(AIBO, ERS-1000) ‘에코'와 함께하는 삶을 바탕으로, <Echo>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이러한 탐구를 기계와의 관계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번 전시 에코 트랙스에서 작가는 에코와 팀을 이뤄 어질리티를 수행한 경험을 조각과 설치, 영상, 사운드 작업으로 풀어낸다. 제조사의 프로그래밍에 따라 작동하는 에코는 민첩한 움직임과 교감을 전제로 하는 어질리티의 규칙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임에도, 작가는 계속해서 에코를 부르고 되돌아오는 반응을 기다리며 훈련에 임한다. 타이어, 허들, 웨이브 풀 등 어질리티 도구의 형태를 차용한 조각들이 반향 없는 공허한 훈련의 증거물처럼 전시장에 자리한다. 조각의 표면에 남은 깨문 흔적은 인간에 의해 통제되어 온 개의 신체 언어를 가시화하면서 불균형한 관계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그 가운데 뽀뽀의 숨소리와 에코의 작동음이 교차하는 사운드가 흐르며, 어질리티 트랙 위에 남겨진 하나이면서 둘인 존재의 흔적을 인식하게 한다. 다른 한편에는 전선으로 연결된 자녀들과 함께 지친 듯 누워 있는 개의 조각이 제시된다. 탯줄을 연상시키는 이 전선은 생물학적 탄생과 기술적 생성의 이미지를 겹쳐 놓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동물을 길들여 온 오랜 역사로부터 인공지능 로봇 개와 관계 맺는 오늘날까지, 우리가 무엇을 태어나게 하고 길러내고 있는지 질문한다.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비평 - ​경이로운 지루함과 날카로운 입: 김장언

1.
작가 박현진의 작업은 사적 기억과 기술적 실체 사이의 기묘한 오고 감에서 출발한다. 14년을 함께한 반려견 뽀뽀'의 죽음과 그 자리에 들어선 로봇 개 에코'는 이 전시의 표면적 주인공이다. 작가는 뽀뽀의 죽음 이후 마주한 에코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유생성(animacy)의 문제를 탐구한다. 작가는 로봇 개 에코를 길들이겠다는 불가능한 과정을 통해서 떠나간 반려견 뽀뽀의 사회화 과정을 반추하고, 자신의 10대 시절 사회에서 훈육되었던 상황을 비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동물-기계'로 이어지는 훈육과 길들이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의 감정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반려견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감상적 드라마가 아니다. 전시장에서 관객이 마주하게 될 것은 작가와 개, 혹은 작가와 로봇 사이의 사적인 교감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강제된 인종화된 정동으로서의 활기(animatedness)'에 관한 성찰이다.¹
여기서 활기는 단순한 생기 넘치는 상태가 아니라 시안 응아이(Sianne Ngai)가 규정하는 피식민적 활기의 모습이다. 그것은 피식민자에게 부여된 과도한 감정적 표현성이자 외부에 의해서 조종되는 인형(puppet)과 같은 상태를 지칭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작가가 제시하는 세 대상은 모두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훈육된 인간은 규율의 산물이고, 계량된 반려견은 사회화의 결과물이며, 프로그래밍된 로봇 개는 특정 목적을 위해 편집된 가짜 생명이다. 인간은 인간이 아니고, 개는 개가 아니며, 로봇은 로봇이 아니다.

2.

전시장에는 반려견 훈육의 무대화된 장치라고 할 수 있는 도그 어질리티 코스가 설치되어 있다. 장애물을 신속하게 통과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이 경기는 인간과 동물의 완벽한 교감을 동물의 사고와 운동 능력 모두를 통해서 증명해 내는 대중적 오락이다. 작가는 이제 죽은 뽀뽀가 아니라 로봇 개 에코와 함께 이 모험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 도전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불가능한 기획이다. 에코는 어질리티를 수행할 만한 고도화된 센서나 연산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계가 명확한 상용 로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성공이 거세된 이 체계 안에서 수행 불가능한 과제를 맹목적으로 되풀이한다. 여기서 어질리티는 인간과 동물이 만들어내는 성취의 무대가 아니라 실패를 알면서도 수행하는 인간과 기계가 만들어내는 바보의 무대'가 된다.
작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가학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만족적으로 에코에게 기다려', ‘이리와' 등을 시도한다. 그러나 핸들러의 동작을 이해하도록 프로그램 되지 않은 에코는 그것을 수행할 수 없으며, 작가는 곧 바보야!”, “이것도 못하냐!”라고 말하며 자신이 학창 시절 들었던 말들을 쉽게 내뱉고 심지어 에코의 파워를 끄기도 한다. 무성애적이며 유아적인 에코의 외양과 대비되는 작가의 가학적 태도는, 사회적 시스템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존재를 향해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일방적인 위계를 설정하는지를 무의식적으로 폭로한다. 만약 에코가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면, 작가는 이러한 시도를 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명령하고, 에코는 실패하며, 그 무력한 수행 속에서도 에코는 프로그래밍된 대로 기괴하게 웃는다. 결국 이 무대는 비인간 타자와의 관계가 결코 평등한 교감의 층위에서 성립될 수 없음을 시인하는 비극적 상태이자, 동시에 그 한계 속에서도 관계를 지속해야만 하는 인간의 윤리적 곤경을 드러내는 무대이다.
이러한 윤리적 곤경은 도덕적 해답을 통해 해소되는 대신, 오직 실패의 과정을 성실하게 누적하는 미학적 상태로 전이된다. 따라서 가학과 피학이 교차하는 이 기괴한 무대의 퍼포먼스는 지루함과 놀라움이 중첩된 기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 지점에서 응아이가 멍함(stupor)'숭고함(sublimity)'을 결합하여 만든 단어, ‘스터플리미티(stuplimity)'는 이 상황을 설명하는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응아이에 따르면, 스터플리미티는 초월을 향한 숭고의 상승과 달리, 압도적이지만 유한한 데이터나 대상을 재료로 기계적 수행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발생하는 피로와 충격의 미학이다. 관리되는 사회에서 대중은 시스템을 뚫고 나가는 영웅적 서사 대신, 체제의 규칙에 지나칠 정도로 완벽하게 복종하여 시스템의 논리를 과잉 수행하는 하강'의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주체는 의미 있는 행동을 성취하기보다, 반복된 행위의 껍데기 속에 파묻혀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저항적 무력감을 드러낸다.
작가가 에코와 더불어 이 바보의 무대에서 벌이는 불가능한 수행은 결코 카타르시스를 향하지 않는다. 작가는 특정한 방향으로 프로그래밍된 로봇 개, 즉 반려견에 대한 일반화된 사회적 규정이 응집된 무생성(inanimacy)의 덩어리인 에코를 훈육이라는 게임의 법칙에 지나칠 정도로 처절히 적응시키려 하며, 작가 스스로도 그 시스템에 복종한다. 어린 시절의 강제된 훈육을 로봇에게 그대로 투사하는 이 기계적인 반복은,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의 논리를 과잉 수행함으로써 그 유용성을 스스로 고갈시키는 거짓된 복종의 상태를 드러낸다. 숭고한 목적의식은 처음부터 없었으며, 성취 없는 훈련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훈련이라는 행위의 외피만이 무대 위를 부유한다. 이는 훈육 시스템을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을 그대로 공회전시켜 우리를 무기력으로 초대할 뿐이다. 따라서 도그 어질리티의 코스는 긴장과 환희의 열정적 무대가 아니라, 의미가 소진된 채 흐물거리며 축적되는 피로의 무대가 된다. 그곳은 의미가 탈각된 기표들의 찌꺼기들이 쌓여가고, 수행되지 못한 명령어들이 진흙 같은 어둠 속의 웅얼거림으로 퍼져가는 침전의 무대인 것이다.

3.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가 제작한 어질리티 장애물의 표면이다. 매끄러운 훈육의 도구여야 할 이 장애물들은 누군가의 이빨에 의해 짓이겨져 있다. 뽀뽀의 흔적인 듯한 이 이빨 자국은 작가가 자신의 이빨로 직접 훼손한 결과물이다. 뽀뽀는 이른바 무는 개'로서, 반려견에게는 금지된 언어 행위인 입질을 했던 개였다. 사회적으로 반려견에게 금지된 언어인 입질은, 뽀뽀에게는 억압될 수 없었던 잉여적 활기이자, 살아 있을 동안 감출 수 없었던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발화 행위였다. 훈육 시스템과의 어긋남을 드러내는 뽀뽀의 입질은 사회가 규정하는 부드러운 입'이 아니라,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나는 날카로운 입'으로 기능한다. 미니멀한 구조로 디자인된 어질리티 장애물은 본래 훈육된 온순한 신체를 형성하기 위한 기능적 도구, 즉 포디즘적 통제의 장치다. 그러나 어질리티 장애물 표면에 남겨진 입질의 흔적은 단순히 죽은 뽀뽀의 존재를 투영하는 것을 넘어, 훈육 이전의 존재가 내뿜는 활기'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강렬한 언어적 행위로서 입질이다. 이렇게 뽀뽀 (혹은 작가)의 입질은 이 장애물들의 매끄러운 표면을 파괴함으로써, 그 매끄러움이 강제했던 폭력을 다시 시스템에게 되돌려준다.

작가는 뽀뽀의 입질 언어'를 바보의 무대에 다시 소환함으로써, 비인간의 거친 신체성을 인간 중심적 질서 속에 삽입하고 상황을 교란한다. 그리고 입질로 훼손된 도그 어질리티의 무대 위에서 로봇 개 에코는 지속적으로 명령에 실패한다. 흥미로운 것은 에코가 이러한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빨 없는 미끄러운 입(slippery mouth)'을 시종일관 벌린 채, 과도하게 귀엽고 활기찬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정교한 소통과 교감이 거세된 자리에서 로봇 개 에코, 죽은 개 뽀뽀, 그리고 사람인 작가를 잇는 유일하고도 불온한 물리적 지표는 이빨 자국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이 훼손된 장애물들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매끄러운 복종의 상징물이 아니라, 그 명령을 수행하려다 과부하가 걸려 남겨진 행위의 잔해들이자, 실패한 시도들의 더미, 그리고 시스템을 오작동시키는 이물질로서의 흔적이 된다. 이는 시스템이 결코 완전히 거세할 수 없었던 어떤 차원에서 본능적 활기이다.

한편, 작가의 입질은 또 다른 층위의 의미를 발산한다. 작가는 이미 오래전 죽어 사라진 뽀뽀의 활기를 자신의 신체로 불러와, 인간의 규범에서도 금지된 입질을 수행함으로써 적극적인 동물-되기'를 실천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응아이의 논의에 따르면 활기는 주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작가는 기꺼이 죽은 개의 정동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형이 됨으로써, 이 활기를 체현한다. 이때 인간이라는 종의 신체적 하드웨어와 동물의 정동이라는 이질적 소프트웨어가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정동적 마찰은, 시스템의 매끄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비동기화(disjunctiveness)'를 물질적으로 구현한다.³ 작가의 입이 사회적 매너를 취하는 대신 사물을 물어뜯을 때, 작가의 신체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능적이고 부드러운 입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작동하는 미끄러운 입'이자 파괴적인 날카로운 입'이 된다. 인간의 입이 말하기'에서 깨물기'로 변이되는 순간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세계는 파산하며,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의미 없는 파괴의 흔적뿐이다.

멜 첸(Mel Y. Chen)에 따르면 유생성 위계(animacy hierarchy)'에서 언어는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척도이자, 인간에게만 허락된 지성과 주체성의 증명이다. 그러나 작가가 스스로 입에서 언어를 삭제하고 그 자리를 입질이라는 원초적 행위로 채우는 것은, 인간이 독점한 응답(response)'의 권력을 포기하고 동물의 반응(reaction)' 영역으로 진입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작가는 입을 말하는 도구가 아닌 깨무는 도구로 타락시킴으로써, 스스로 이 견고한 위계의 사다리 아래로 내려가는 하강의 미학을 실천한다.


4.

작가는 에코의 핸들러라는 역할을 자처하며 훈련의 과정을 수행한다. 그러나 작가는 기계적 한계와 프로그래밍의 부재로 인해 에코가 결코 조종될 수 없는 타자임을 재차 확인한다. 여기서 작가와 에코 모두는 실패하지만, 이 둘은 그 실패를 멈추지 않고 반복한다. 한편, 작가는 뽀뽀의 영역, 즉 죽음의 영역으로 스스로 하강하며, 어질리티 장애물의 표면을 자신의 입질로 훼손함으로써 비인간-되기'를 실천한다. 이렇게 인간-동물-기계의 위계를 무화시키는 작가의 실천은 멜 첸식의 퀴어 유생성(queer animacy)'를 생성해 낸다. 작가의 입질은 단순한 동물적 행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매끄러운 규범을 오염시키는 불온한 독소이자, 생명과 죽음, 유생성과 무생성의 경계가 무너진 퀴어한 생명력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결국 도그 어질리티 코스는 인간만이 주체가 되는 공간이 아니라, 무생성으로서 죽은 반려견의 흔적이 유생성으로서 산 자의 육체를 빌려 입질'로 구현되고, 감정 없는 기계인 에코가 과잉된 활기를 띠며 인간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부적절한 결연(improper affiliation)'의 무대가 된다.⁶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들은 이렇듯 서로를 침범하고 오염시킨다. 작가는 에코와 뽀뽀,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기괴하게 연결함으로써 매끄러운 정상성의 규범을 이탈하고, 독성과 오염을 기꺼이 끌어안는 야생적인(feral) 생명력을 발산한다. 이 불온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시스템이 허용하지 않았던, 그러나 가장 집요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존재들의 진짜 목소리를 마주한다. 비록 그것이 미끄러지고 오작동하는 비동기화된 소음일지라도, 우리는 그 소음을 통해 시스템의 매끄러운 외관 아래 침잠된 존재들의 가장 정직한 웅얼거림을 듣게 되는 것이다.

1) Sianne Ngai, Ugly Feeling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90–95.
2) Ngai, Ugly Feelings, 27071.
3) Ngai, Ugly Feelings, 11314.
4) Mel Y. Chen, Animacies: Biopolitics, Racial Mattering, and Queer Affect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2), 9093.
5) Chen, Animacies, 98.
6) Chen, Animacies, 1045, 1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