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형준
2021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 수료
주요 단체전
[전시 설명]
어둔 곳에 있을 땐 내 그림자도 날 떠나 있는다 In My Darkest Moments, Even My Own Shadow Abandons Me
작가 주형준은 ‘소원'이라는 인간 보편의 욕망을 동시대적인 시선으로 탐구한다. 그는 신화나 영웅 서사에 등장하는 거창한 소원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들의 소박하면서도 절실한 소망에 주목하여 이를 화면에 담아낸다. 전통 동양화의 여백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는 의도적인 생략과 과장이 담긴 표현 기법을 통해 화면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야기의 신성함을 부각시킨다. 이번 전시는 온 세상이 칠흑 같은 먹색으로만 보이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빛줄기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인물 'Q‘의 서사를 바탕으로 한 회화와 설치 작업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서사가 담긴 거대한 화면을 분절시켜 간격을 만들어내고, 돌출된 구조물 위에 회화를 배치하는 설치 방식을 선보인다. 이러한 장치는 관람자가 정적인 감상에서 벗어나, 작품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입체적으로 서사를 읽어나가도록 유도한다.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온눈으로 부딪히는 회화: 주형준이 그려-나가는 소원
- 콘노 유키
소원에 모양 이 있는가 하면, 그것은 있는 동시에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없지만, 있다. 2025년에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어둔 곳에 있을 땐 내 그림자도 날 떠나 있는다》에서 주형준은 소원의 모양을 서사 형식을 통해서 탐구한다. 작가는 이전 개인전 《흰 매가 머물던 자리》(상업화랑 용산, 2023)에서,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 《완성연상》(쉬프트, 2020) 에서 그리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사이에서 그려나가는 것에 관심을 가져왔다. 소원의 모양은 주형준이 다루는 표현 방식과 설치 구조와 맞물리면서 관객의 시선을 통해서 성립된다. 저마다 작품 안에 등장하는 충돌과 연쇄작용의 장면은 벽면에 입체적으로 만든 요철을 따라 옆으로 펼쳐진다. 평면과 공간, 그림과 여백을 잇는 과정은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기승전결을 가시성과 비-가시성 안에서 그려나가는 동시대의 표현법이 된다.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위태롭지만 균형을 찾아 믿음을 쌓아 가는 돌탑처럼, 혹은 나에게/나를 통해 신성한 영역으로 진입하고 보호받는 토템처럼, 신봉과 자기 수양의 관계로써 성립(成立) 즉, 이뤄지고 세워지게 된다―이것이 세로로 긴 형태의 작업으로 구성된 2023 년도 개인전의 뼈대였다. 이 지점을 ‘짚고' (또) ‘넘어가지' 않는 이상, 그가 ‘서사'라는 말로 설명하거나 입체적 구조를 통해서 회화로 소원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무엇보다 소원은, 암울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어둠이 휘날렸다>(2025)를 마주한다. 어려움을 상대하고 고군분투하는 Q의 서사이다. 보는 사람은 처음에 몸 둘 바를 모른다. 연쇄와 충돌이 이미 눈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눈을 뗄 수가 없는 광경 앞에서, 보는 사람은 멀리 있다가(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게 된다. 멀리서 가까이, 흑과 백, 여백과 그려진 부분, 긋는 획과 스미고 번지는 색면, 궁극적으로는 종이와 입체적 구조까지 대립하는 관계가 보이는데, 이는 주형준의 작업에서 특징적인 충돌과 연쇄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지속되어 온, 매체와 작가의 관계 맺음이라 할 수 있는데, 작업에서 소원은 표현뿐만 아니라 주형준이 재료를 다루는 단계, 종이를 판에 평면으로 붙이는 대신 공간 안에 입체적으로 세우는 단계, 더 나아가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서 대립하는 관계 속에서 기승전결의 서사를 담은 과정으로 경험된다.
분리된 공간을 잇는, 확장된 회화-공간(의 연결)을 따라, <떠가고, 날고, 돌고, 흔들리지만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025)에서는 유성처럼 빛이 날아온다. 반대편 벽면에 걸린 <이윽고 공중에 마지막으로 길게 휘날렸다. 아직 떨어지지 않는 것.>(2025)에서는 소용돌이와 용암의 분출이 보인다. 같은 전시장에 걸린 <부디>(2025)라는 제목에도 알아볼 수 있듯이, 주형준의 작품은 재난적 상황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는 스펙터클일까? 아니다. 그렇다고 ‘풍경'이라고 설명하면 오해가 생기는데, 주형준의 회화에는 징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어떤 일이 닥친 것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혹은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놓인 상태, 즉 광경이다. 그 안에서 시선은 압도당하기만 하지 않고 어려움을 풀어나가게 된다. 자세히 보면 멈춘 곳과 요동치는 곳, 위에서 아래로 시선이 내려오기도 가로지르기도 하는 교차하는 힘의 방향을 알 수 있다. <별이 된 사람>(2023)처럼 돌아가고 순환하는, 충돌하고 연쇄하는 시각적 표현에서 보는 사람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겪은 어려움의 ‘서사', 그 내용적 기복을 읽는 동시에 소원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바꿔 말해, ‘소원의 모양'을 어떻게 ‘그려'-‘나가게' 되는지 시선으로 따라가게 된다.
<얼떨결에 밟은>, <가장 큰 힘은 가장 큰 어려움에서 나온다>, <유난히 길었던 하루를 끝내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네가 걸어갈 길에 빛이 가득하길 바래>(모두 2025)에서도 연쇄와 충돌의 반복이 보인다. 앞선 작업보다 세부에 주목한 회화에는 색감이 더해져 극복 단계의 서사라는 점이 나타나 있다. ‘이 어려운 순간 또한 지나가리라'―그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될 때, 고난의 상황은 사실 순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주형준은 순간 안에 충돌과 연쇄가 있음을, 어떤 것과 어떤 것이 만난 관계를 요철로 꺼내어 보여주면서, 순간 안에 시선이 머물고 바라보도록 한다. ‘서사'라는 표현에는 극복을 통해 소원이 이루어지는 과정 또한 담긴다. 그러면서 기복(起伏)은 곧 기복(祈福)이 된다. 상승과 하강은 작품의 표현과 설치 방식뿐만 아니라 서사의 감상-경험과 연동되어 심리적인 변화로써 전달된다. 소원의 모양은 없는 것을 있게 하(리)라는, 부재와 존재가 한 몸이 되어 나타난다. 말하자면, 머릿속에서 빚어지는 소원의 모양은 순간 대신 과정을 동반하여 작가와 작품, 그리고 보는 사람의 시선의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전시장을 나가기 전에,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어둠이 휘날렸다>를 다시 본다. 자세히 보면 벌을 서는 사람이 있다. ‘받는 것'인 동시에 ‘서는 것'―이 이중 구속에 놓인 상태에 눈물을 흘리며 고통에 시달리는 심상과 극복으로 전진하는 소원을 비는 태도가 겹친다. 몸 둘 바를 모른다고 할 때, 사람은 어찌할 줄도 모르는 채 서 있다. 관객 또한 어쩌면 이 광경 앞에서 (벌을 선 것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이 멈춤의 상태에서 헤어나가듯이 세부의 관계를 읽어내고, 내면을 되살피고, 이야기를 그려나갈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목도의 답답함을 이겨낸다. 작가가 온몸으로 겪은, 부딪힌 경험을 눈으로, 눈을 통해서 받아들인다=이해한다.
이로써, 전시 공간 또한 기승전결의 서사가 담긴 공간이 된다. Q를 주인공 삼은 작가의 내면은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것 사이에서 전통 회화의 병풍처럼 숨기는 동시에 드러내는 자리로써 전시장 안에서 내밀한 공간을 만들게 된다. 동선을 따라 마지막에 보게 되는 <누군가는 순응하고 누군가는 극복하니, 누군가는 잡아먹힌다>(2024)의 눈은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어둠이 휘날렸다>의 벌을 서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검은색으로 그려진 어둠을 하얀색으로 그려진 눈이 똑똑히 보고 있다. 작가의 작업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눈의 모티프는 이 곤경을 대하는 작가이자(,) 감상자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소원의 한 모양이라면, 우리는 눈으로 뜨고 보게 된다. ‘누군가'의 굴레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기꺼이 누군가가 되는 것, 즉 자신을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보고' 내가 놓인 상황을 곱씹어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세심히 나와 내가 놓인 상황을 보는 것. 그리는 것과 소원을 그려나가는 것, 바꿔 말해 곤경을 묘사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화면-서사-감상의 충돌이자 연쇄를 대면하여 소원으로 ‘성립'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