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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작가소개

송승준 / 2024년 22회

​송승준

studioseungjoon@gmail.com​
www.seungjoonsong.com​

2022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 컨텍스츄얼 디자인(Cpontextual design) 전공 석사 졸업

2012    홍익대학교 프로덕트디자인/목조형가구학과 복수 전공 학사 졸업


개인전
2025    ​《폴리네이터 The Polinator》, 금호미술관​, 서울 ​
2024    《초거대 녹색지대 HYPER GREEN ZONE​》, 탈영역우정국​, 서울 
2023    《DMZ 생태보고서 누락종 Missing Species in DMZ Biodiversity》, 크래프트 온더 힐​, 서울


단체전

2024    《​Navy Woods: 마주할 용기》​, 언베니쉬, 서울 
2024    《진열장의 사물들 Showcased Objects》, 워터마크 갤러리, 서울​ ​
2023    《Nature+Meta​》, 워터마크 갤러리, 서울 
2022​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 Graduation Show 2022​》, DAE, 아인트호벤, 네덜란드
​       

주요 수상 및 선정
2024    제22회 금호영아티스트 선정, 금호미술관
2024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서울문화재단

[전시 설명]
폴리네이터 The Polinator

작가 송승준은 자연의 이상화된 면을 강조하는 낭만적 상상력의 대안으로, 자연의 섬뜩하고 모순적인 이면을 담은 시나리오와 이에 대응하는 설치 작업으로 공간을 연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주된 관심사인 현대의 무인지대(DMZ, CEZ, FEZ)에 대한 생태적 통찰을 확장한 프로젝트로, 가상의 인물이 남긴 사변적 에세이 「어느 프록시마인의 에세이」 (2025)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프록시마'라는 공중 난민촌을 배경으로 자연에 대한 실재적 상상력이 투영된 시나리오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속 주인공이 느끼는 공중 생활의 어려움과 유한한 존재로서 무한한 바람(wind)을 탐닉하는 내용을 다룬다. 작가는 시나리오를 실제로 재현한 공간 설치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는 자연의 속성을 환기시킨다.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송승준의 《폴리네이터》 방문을 위한 안내서
- 최희승


프록시마의 입구에서
최소한 10분, 아마도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상상과 가상, 현실이 뒤섞인 송승준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 말이다. 여기 금호미술관의 지하 전시장으로 도착한 당신은 <폴리네이터 (The Pollinator)>(2025)라는 제목의 개인전이자 일종의 서사 속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자연과 인간, 생명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다매체적으로 풀어낸 이번 <폴리네이터>는 작가의 전작인 <초거대 녹색지대(Hyper Green Zone)>(2024)에서 이어지는 구성을 지니며 이야기가 나아가는 여정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너무 낯설거나 어떻게 감상을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느낄지 모르는 당신에게 일정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기를 제안한다. 작가적 세계관의 중심이 되는 송승준의 텍스트와 마치 영화의 세트처럼 장면의 일부를 구현한 공간, 조각과 가구들, 동료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제작한 사운드와 향기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 입구에서 부터 천천히 읽고, 보고, 듣고, 맡으며 다양한 감각을 총체적으로 인지하는 시간이 곧 당신의 러닝타임이 될 것이다.

첫 번째 공간은 횡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당신은 벽과 나란히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는 검은색 테이블을 따라 이야기를 만나고 내부로 입장하게 될 것이다. 스탠딩 테이블 위에는 A5 크기로 제본된 에세이가 놓여 있는데 이것은 공중 난민촌 프록시마(Proxima)에 거주하는 프록시마인(Proximian)이 작성한 것이다. “이곳은 하늘과 맞닿아 있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지하실 같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 속에는 글쓴이가 프록시마에서 느끼는 밀실의 감각, 난민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불안, 자신과 달리 자유로운 바람에 대한 동경 등 자연과 인간의 입장이 전복된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단편들이 기록되어 있다. 사이파이(Sci-fi)적인 설정과 단어들이 당신의 몰입을 어렵게 할 수 있겠지만, ‘무분별한 생태 파괴로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평화로워 보이지만 위협을 내재한 녹색 지대', ‘인간 계획의 실패로 축적되는 잉여자원' 등 어딘가 익숙한 현실을 상기시키는 부분을 통해 계속 읽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을 읽고 난 뒤에 비로소 전시장 첫 번째 공간에서 테이블과 기둥의 색이 왜 검은색인지, 벽면에 나열된 마름모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뮤지션 샤이 아시안(Shy Asian)과 협업하여 제작한 사운드가 공간 전체에 어떤 감각을 만들어내고자 했는지 등에 대해 당신은 이해하거나 다가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전시장에서 만나게 될 모든 요소들은 서사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기능과 역할을 지니고 있다. 송승준은 다양한 요소를 구현함으로써 ‘어느 프록시마인'이라는 화자를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현실감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청자가 그것을 하나씩 발견하고 통합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금호미술관 지하 전시장이라는 공간은 작가가 창조한 가상인물이 살아가는 상상의 공간이자 보는 사람의 참여를 유도하는 연출의 공간, 그곳으로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디자인 환경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 공간을 지나 두 번째 공간으로 들어가는 커튼을 열면, 마치 시나리오의 장면 이동과 같이 또 다른 신(scene)이 펼쳐져 있다. 예상컨대 여기에서 당신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비행기 혹은 거대한 연의 모습을 지닌 조각의 모습일 것이다. 앞서 에세이를 읽었다면 이것이 바람이 되고자 했던 주인공이 고안한 코디 연(Cody Kites)이자 결국 그의 몸을 싣고 날아올라 착륙한 모습이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 속에서 코디 연은 강한 바람을 견딜 수 있는 내풍나무(typhoresista)로 만들어졌다고 쓰여 있는데, 공간 바닥에 놓인 나무의 씨앗 주머니와 흩뿌려진 모습을 통해 주인공이 생명을 널리 퍼뜨리는 폴리네이터(꽃가루를 옮기는 벌, 나비 등의 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곳 두 번째 공간에서 코디 연과 나무의 모습을 관찰하며 녹음의 향기를 감지했다면 당신은 순백색 내풍 나무의 꽃향기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서사 - 초거대 녹색지대와 폴리네이터
그렇다면 송승준이 2022년 경부터 작업의 주제로서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자연'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자연의 특수한 의미와 이번 <폴리네이터>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전작인 <초거대 녹색지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한국 전쟁으로 만들어진 비무장지대(DMZ),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CEZ), 후쿠시마(FEZ)를 예로 들며 인간이 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 회복된 자연 생태계를 ‘현대의 무인지대'로 바라본다. 그의 시선에서 무인지대에 여전히 존재하는 지뢰나 핵 오염수는 각종 위험과 위협, 나아가 폭력적인 성질을 지닌 것으로 이것들이 남아있음에도 일부 사람들이 ‘천혜의 자연'과 같은 수식어로 무인지대의 자연을 부르는 일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과 원형의 자연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작가는 그가 파악한 현대의 무인지대가 지닌 모순을 서사를 통해 표현하였다.

2024년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린 <초거대 녹색지대>는 미래의 역사 박물관이라는 설정을 통해 각종 바이러스와 변이 생명체로 인해 지구의 무분별한 녹지화가 진행된 이후, 그 광범위한 녹색지대에 적응한 인간 삶의 모습을 7개의 표본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했다. 바이러스를 내포한 녹색지대를 경고하는 표지판, 테러 무기로 개발된 유전자 변형 총알개미, 태평양에서의 포격적을 알리는 긴급 호외, 광합성의 신을 숭배하는 토템 등 대표적인 녹색지대의 상징물을 과거의 유물처럼 실물로 만들고 각각의 설명문을 작성하여 하나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송승준의 스토리 설정과 표본의 디자인, 구현 등 작업의 과정이 독자에 대한 고려보다 작가의 주관적인 선택을 우선한 파편의 총합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사의 시작과 전개 중 나타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는 관점, 시간의 개념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 코로나19와 전쟁, 기후변화 등 사회적 이슈를 미래의 생태와 연결시켜 바라보는 시각과 이것을 발굴된 미래처럼 대하는 송승준의 디스토피아적인, 시간에 대한 독특한 태도를 엿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서사는 이어지며 나아가고 있다. <폴리네이터>는 <초거대 녹색지대>의 설정을 공유하며 한 인물의 시선으로 무인지대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조명한다. 후반부에 이르러 프록시마인의 에세이 속 주인공은 가볍고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바람이 되기를 염원하며 거대한 연에 몸을 맡긴다. 그가 일으킨 바람은 폴리네이터가 되어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강인하게 자라나는 식물의 꽃가루를 이곳저곳으로 퍼뜨린다. 그리고 이야기 밖의 폴리네이터로서 작가는 시나리오적 상상력이 에세이와 디자인으로 구현된 무대로, 코디 연이 조각처럼 자리하는 공간 조형의 언어로, 새로운 생명이 밀실을 떠나 꽃을 피워낸 서정적인 장면으로써 이번 개인전을 구성하고 있다. 송승준은 미술관 지하 1층에 발을 들인 관람객에게 최대한 다양한 경로로 전달하여 자신의 세계를 감각하게 만들고, 앞으로도 계속될 이 이야기의 진지한 독자로 초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