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현
본 전시는 여러 지점에 존재하는 공간 이미지들의 접속을 통해 실재와 가상의 불확실한 경계를 드러내며, 동전의 양면과 같은 요소들을 중첩하고 병렬시켜 작가의 심리적 불안감을 표현한다.
작품은 공간 속 공간, 이미지 속 이미지의 체계를 이용하여 서로 다른 범주의 가치들을 병렬시킨다. 이 체계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같은 세계 안에 상호 연결되어 있지만 불연속적이고 이질적인 두 요소가 공존하고 있음을 드러내어 우리의 눈 앞에 있는 현실의 이면을 확장하여 새롭게 인식시킨다.
“1975년 여름, 무더운 날씨 속에 덜컹거리는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할아버지 장례식에 도착했다. 그 당시 낯익은 도시에서 낯선 시골로의 이동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 매우 긴 심리적 거리를 느끼게 했다. 마치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에 이르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공간으로의 낯선 여정과 같았다. 세월이 느껴지는 시골집은 개량 한옥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집의 안과 밖의 접경인 대문은 새로운 세계와 접한 경계이자 또 다른 공간으로 진입하는 통로였다. 그 커다란 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처음 본 것은 살아있는 돼지의 목을 시퍼런 칼로 잘라내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순간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