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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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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원경 妙園境

 조강신 개인전

묘원경 (妙園境)


죽음과 삶, 현재와 과거가 동시적으로 중첩되고 얽혀 있는 혼종의 공간'은 조강신의 작업을 이끄는 핵심 주제이다. 2010년 경부터 제작한 <묘원경(猫源境)> 시리즈는 로드킬 당한 고양이 사건에서 비롯된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작품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나무는 죽은 고양이의 혼령을 흡수한 듯 동물성을 띠고 있고, 때로는 동물 형상의 열매를 맺기도 한다. 잠재태로서의 형상들은 타자의 신체와 동등하게 공명을 이루며 무한히 변해가는 가능성에 열려 있다.
그래서 동물 같은 식물, 식물 같은 동물이 중성화되어 변해가는 낯선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보색들이 충돌하는 과감한 색채의 대비는 조화로움보다는 불편함을 느끼게 하지만,
음과 양처럼 이질적인 대립이 상호작용 하며 하나를 이루는 우리의 현실을 은유하는 듯하다. 이러한 장면은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에서처럼 꿈이나 환상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파편화된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전시 타이틀을 동명의
<묘원경(妙園境)>으로 바꾸었다. 이는 고양이 ()'를 묘할 ()'로 바꾸어 고양이 로드킬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개념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죽음과 삶이 혼종된 공간은 사실 우리 삶에서 종종 발견된다. 체험을 통한 죽음과 탄생, 추함과 아름다움이 중첩된 공간은 이상적인 유토피아도 아니고 어두운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굳이 규정한다면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푸코가 이름 붙인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다양한', ‘혼종된'이라는 의미의 헤테로(heteros) ‘장소'라는 의미의 토포스(topos) 합쳐진 개념이다.
푸코는 모든 장소 바깥에 있는 이상향으로서 유토피아의 개념과 대비 시켜 헤테로토피아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장소를 가지는 유토피아라고 정의했다.
이는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지금-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실제로 접하고 경험할  있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은 우리가 평소 알고 느끼던 진부한 장소와는 다른 이질적인 혼종성으로 재배치된 현실이다.

이번에 새로 제작된 조각들은 회화에서 시도한 혼종의 공간을 입체로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 기다랗고 하얀 몸통을 지닌 나무의 형상은 각종 동물과 영혼의 교배를 이룬 탓인지 관절이 있는 중성적인 형태로 변해 있다.
아직은 나무의 형상에 가깝지만, 움직임이 자유로운 동물성의 활동으로 머지않아 움직일 거 같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흰 몸통과 대비를 이루는 상단 끝 부분의 연두색은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부활을 일구어내는 불굴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삶과 죽음, 주체와 객체 같은 이분법을 초월한 이 불굴의 생명력이야말로 작가가 추구하는 궁극의 대상이다. 니체가 노예 도덕을 부수고 힘에의 의지'를 통한 초인을 갈구한 것처럼, 그녀는 현대 사회가 이분법적 잣대로 규정하고
억압한 힘을 해체하여 주객 일체의 생명 작용을 복원하려는 듯하다
. 이처럼 <묘원경>의 혼종 공간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즉흥의 힘이 창조한 공간으로서 보는 이에게 현상학적인 만남을 제공하고 있다.



(
최광진의 서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