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민
이현민 개인전
《숨 Breath》
2021. 10. 28 - 11. 07
전시 <숨>에 관하여
“어쩌면 그림은 붓이 아니라, 숨으로 그린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종이보다는 허공에 그려댄 그림들이 훨씬 많을 거다. 그것은 말하자면, 숨으로 그리는 것이라서 쉽게 그려지지만 또한 동시에 사라진다. 그래서 한 번도 완성된 적이 없다. 하지만 늘 숨을 자각하고 그 리듬과 형태를 따라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리기를 지속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내게 그리기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림의 표면이 굳고 마르기 전까지 그 표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움직임과 흔적들이 그림의 시간과 궤적을 이룬다. 그림이 비록 종이와 같거나 그보다 조금 도드라진 두께를 가질 뿐이지만, 때로 아주 두껍고 묵직하게 느껴지기도 때로 길고 아득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그것을 비로소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아직 진행 중인 그림의 표면에서 반복적으로 긋고 지우고 그리고 문지르고 하다 보면, 무언가를 찾고 기억하려는 것도 같고 동시에 지우고 잊으려는 것도 같다. 이 과정에서 세계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닫는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이 다른 것처럼, 눈으로 보거나 마음속에 간직한 이미지와 그것을 실제로 그려내는 것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그래서 그리기는, 마치 기존의 기억을 꺼내고 지우면서 더듬더듬 새로 낱말을 익히는 일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렇게 보면, 그리기는 끝도 없이 이어져야 할 것만 같다. 당황스럽지만, 한편 다행스럽다.
그림들은 무심하면서도 한편 집요하게 이어진다. 종종 슬럼프에 빠지지만 붓질에서 생기는 힘과 속도에 매달려 간신히 탈출한다. 그 붓질이 점점 가속하면 당분간은 그리기가 가능해진다.
전시 <숨>은 삶의 다양한 장면과 대상들, 그리기를 지속하고자 하는 한 화가의 의지와 욕망, 순간순간의 감정과 태도 등을 가볍고도 솔직하게 그려낸 그림들을 보여준다. 생활과 예술의 경계에서 그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그리기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와중에 화가의 눈과 마음에 세계는 어떤 모습과 질감으로 맺히는지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1.10 이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