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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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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전

금호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전

[곽상원, 권혜경, 김정은, 민혜기, 서민정, 이주원, 조민아, 최희승, 허산]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In Every Language We Know
 


 

자유라는 가면을 쓴 오늘날의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선택권과 권한을 양도한 듯하지만, 선택을 가로막는 무수한 선택지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과잉 긍정의 시대는 우리에게 무력감과 피로감만 제공한다. 그리고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우리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는 목적 없는 항해의 길로 인도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언급한 호모 사케르처럼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며, 산 정상 위로 바위를 계속해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보다 더 비극적이다.

2017년도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는 동시대에서 만연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온 아홉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는 영국의 문화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의 산문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Confabulation』의 제목이자, 이에 수록된 에세이 「망각에 저항하는 법 How to Resist a State of Forgetfulness」 속 한 문장에서 가져온 문구이다. 버거에 의하면 오늘날 세계는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물살 속에 있으며, 미디어가 조장하는 불안과 정치인들이 내던지는 공허한 담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망각의 상태에 빠져들도록 한다. 존 버거는 이처럼 공허하게 비어져가는 상태를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로 계속해서 메우고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피적 언어들로 가득 찬 세계 안에서 말로 옮길 수 없는 메시지자연적/본질적 외양들을 읽어 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탐구해온 아홉 작가들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이 읽어내는 세상의 모습들은 각기 다르지만 보는 이에게 공감과 사유를 제공하며 표피적 언어에 가려졌던 무엇(thing)”, 다시 말해 가려진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아홉 작가들은 2016 10월 금호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약 1년 동안 고민과 실험을 거듭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3층 바깥 전시장에는 동시대에서 현대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우화 속 동물들이나 인물들로 위트 있게 그려내는 조민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며, 안쪽 전시장에는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와 억압을 풍경으로 그려낸 곽상원 작가, 일상의 사물을 재현과 투영의 대상으로 3차원적 회화에 담아낸 권혜경 작가, 익숙한 오브제들의 물리적 성질과 기능을 뒤틀어 내면의 감정을 표상하는 최희승 작가가 소개된다. 지하 1층 바깥 전시장에는, 일상 공간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과 코딩을 사용하여 새로운 조형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민혜기 작가, 소통의 불가능성에서 오는 상실의 감정을 심상의 풍경으로 묘사하는 서민정 작가, 일상적인 공간을 균열 시키는 설치 작품으로 공간 이면에 감춰진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이끌어내는 허산 작가가 소개되며, 안쪽 전시장엔 지도라는 공적 매체를 통해서 사적 시공간의 좌표를 형상화하는 김정은 작가, 영상과 설치 작업을 통해 실재하는 듯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오늘날 정보가 지닌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주원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이처럼 공동체와 개인, 관계와 소통, 허구와 실재, 공감과 연대 등 세상을 가늠하기 위해 각자의 언어로 발화해온 아홉 작가들의 작품은 망각의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일 것이다.

소통을 하기 위해 우리가 처음 듣고 배우는 것은 언어이다. 이 언어는 몸짓 언어, 행동 언어, 공간 언어 등 모든 언어를 포함하고 있다. 발화되지만 발화되지 않은 것이기도 한 이 원형의 언어는 오늘날 예술에도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터득한 언어를 각자의 방식으로 번역하여 시각 예술로 표상한 아홉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 기간 중 진행되는 비평워크숍은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작품에 대한 비평과 코멘트를 함께 공유하는 자리이다. 비평워크숍을 통해 작가는 작업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고, 관람자는 동시대 미술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지냈던 각자의 모든 언어를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