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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방희영 개인전: 무지개

방희영 개인전 <무지개>

 

 

 

일자: 2012년 9월 6일(목)~9월16일(일)| 월요일 휴관

장소: 금호미술관 1층

 

 

 

 

 

평론_템페라, 그 새로운 부활

 

프레스코와 더불어 15세기까지 유럽 화가들의 눈과 손을 지배했던 과거 미술사의 템페라는 이제 방희영의 땀이 밴 손길을 거쳐 21세기 지평 위에서 새롭게 부활한다.

 

방희영의 템페라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기계성과 반복성에 대한 도도한 도전을 발견한다. 그녀는 직접 캔버스를 만들고 매체를 만들면서 기성품들의 행렬을 비껴간다. 제조과정을 거쳐 획일화된 매체적 특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유화 물감과는 달리, 템페라는 물감의 원료가 되는 안료(Pigment)와 화가가 원하는 상태의 모제(Medium)를 직접 조합, 반죽하여 사용하며, 그럼으로써의 작품의 표면에 밀착시킨다. 말하자면 템페라는 매번 새로운 매체로 결정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방희영의 템페라는 때로는 투명하고 때로는 불투명하다. 그리고 수채화처럼 평면적이지 않고, 긁혀진 자국과 도드라진 양각(羊角), 강한 힘과 유연한 흐름들을 아우르고 있다. 캔버스의 어느 한 구석도 방희영의 브러시의 스트로크와 손놀림, 숨결, 땀이 배지 않은 곳이 없다. 이것은 화가로써의 방희영과 그림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보여주며, 삶의 시간들이 매체의 물질성으로 체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그녀의 그림에서 물질적 필연성과 우연성은 서로 융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융합은 방희영의 열린 시선을 통해 주제의 개방성과 맞물리면서 해방을 경험한다.

 

그러면 방희영의 그림의 개방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꽃의 운명을 대하는 방희영의 애정 어린 시선과 깊은 묵상으로 포착한 부유적(浮游的) 이미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꽃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하늘과 태양을 향해 가지를 뻗고,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아낌없이 대기 속에 흩뿌린다. 따라서 꽃의 이미지는 정지(停止)와 부유성을 함께 아우르는 메타포이다. 특히 방희영을 매혹하는 등꽃의 찬란함은 찰나적 삶을 충실하게 살고난 뒤에 결코 자기의 죽음을 서러워하지 않는, 담백한 초월의 기백을 반영한다. 이것은 날마다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며 다시 태양처럼 떠오르는 화가 방희영의 모습이기도 하다. 시선을 사로잡는 꽃의 일시적 영광은 스스로를 뽐내기보다, 더 크고 심오한 우주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봉헌한다.

 

꽃의 형상과 공간이 어우러진 그녀의 작업은 부유성의 이미지를 통해 시간과 의식의 폴리포니를  들려주는 동시에 꽃잎이 떠다니는 대기의 흐름까지 함께 보여준다. 순간과 영원의 교차점들은 꽃잎의 형태로, 잎사귀의 소리로 영글어지고, 그것은 방희영의 피부와 의식에 배어 다시 그의 호흡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따라서 방희영이 보여주는 부유성의 이미지는 대기 속에서 생명과 생명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반응하며 환희의 송가로 승화되는 과정 자체이다.

 

 

 

 


작가노트_무지개

 

그림을 그리며 매일 나를 떠나는 연습을 한다. 고여 있는 웅덩이 속의 나 자신, 초라함과 나약함, 존재의 허무함과 막연한 불안감, 두려움을 떨쳐 버리려 오늘도 붓을 든다.

 

그림은 나의 기도이며 나의 노래이다. 그 보이지 않는 창조의 손에 이끌리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 갈수 없다. 쓰라린 시간들과 부서짐의 연속이지만, 눈을 들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무지개를 바라본다.

 

발아래 피어있는 꽃들에 대한 사랑, 작은 놀라움, 작은 기쁨들이 나를 설레게도 하고 나를 슬프게도 한다. 꽃은 풍요로움의 상징이기도하지만 그 덧없는 생명이 가련하고 무상하다. 꽃은 野性에서 超自然으로, 찬란함에서 초라한 어두움 속으로, 生에서 死로가는 수많은 인생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 인생의 덧없음에 가슴 저리지만,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시작을 보며, 작고 연약한 세계 속에서 거대한 창조주의 힘과 意志를 느낀다.

 

눈물후의 기쁨, 고통 뒤에 찾아오는 평안, 오랜 기다림 끝의 해후처럼 무지개 넘어 약속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