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금호미술관

전시안내

이태길 작품전

이태길 작품전

 

 

 

2012년 3월 8일(목요일) - 18일(일요일)

 

금호미술관 전관  

 

 

 

Opening. 2012년 3월 8일 오후 5시

 

 

 

 

인송 이태길 화백이 근년에 제작한 <축제>의 한마당을 펼친다. 근작들은 그가 몇 년간 심혈을 쏟은 작품들이다. 그간 몇 차례의 소품전을 제외하면 오랜만에 갖는 대작전이다.

애초 그가 <축제>라는 명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0년대의 개방화 내지는 세계화의 물결과 궤를 같이해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그가 세계 속에서 우리 미술의 얼을 찾고자 하는 데 목표를 두고 그의 예술을 새롭게 구축하려던 시기였다. 지난 시절 형설의 공을 쌓아온 국전시대를 되돌아보면서 좀 더 국적있는 자신의 회화를 지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시도는 1999~20001년 동경 「평화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빛깔의 신비”, “코리안 축제”와 같은 우리 민족에 내재되어 있는 미의식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였다.

이즈음 그가 새로운 변화를 의식한 건 1990년대 두 차례 있었던 만주와 압록강 답사가 계기가 되었다. 1995년 고구려와 발해문화를 탐방하고자 만주를 여행하고, 이듬해 ‘조선통신사 길을 가다'에 참가해서 일본을 여행한 건 큰 변화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1997년 두 차례에 걸친 압록강 답사여행은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그 때 그는 우리의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무엇보다 고구려 벽화에서 우리 선조들의 얼을 확인하면서 우리 민족의 얼의 표현을 위한 ‘축제'를 떠올렸다. 당시를 그는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아침에 일어나 캔버스 앞에 서면 무상무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기를 10년이 지나면서 찾은 것이 그 원 안에 ‘나 자신'이 있다는 거였다. 이전에는 자연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안에 자연이 있다는 걸 생각했다. 내 안에 있는 자연은 축제 그 자체였다. 축제는 자유로부터 이루어진 공간 속에 있었다. 그건 가무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세계였다. 그래서 원상(圓相)으로 하나의 우주적 세계를 그리고, 그 안에 숨쉬는 인물을 표현했다. 춤사위가 흥취를 지녀야 하고, 이를 빌려 즐거움과 웃음으로 세상을 긍정하는 마음을 표현하였다(「자작 수상」 2001에서 번안).

 

이렇게 그의 <축제>를 위한 탐색은 고단한 여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다. 그건 젊은 날 잊고 있었던 우리 민족의 예술혼에 접하면서였다.

그가 이를 위해 지난 2천년 대 초에 가진 <축제>전은 그의 후기시대를 맞는 회심의 작품전이었다. 당시 <축제>는 그가 막 새로 개안한 우리 민족의 예술혼을 표출하기 위한 압축판이었다. 그의 언급처럼 <축제>는 동그라미를 상징형상을 도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강강수월래가 원무(圓舞)를 그리듯이, 그에게서 동그라미는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걸 의미했다. 그가 동그라미 말고도 여러가지 춤사위를 곁들인 건 우리 민족이 대대로 염원했던 신명(神明)을 회화적으로 구현하려는 데 있었다.

 

                 축제를 위한 조곡組曲 — 인송 이태길 <축제> 근작전 (김복영 미술평론가⋅서울예대 석좌교수) 서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