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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곽승용개인전

금호미술관 2층

곽승용-사이의 공간
 
 
박영택(경기대학교예술대학교수)
                                         
 1910년 근대의 충격을 접한 이래 서구문명화는 비문명국 조선이 도달해야 할 절대적인 목표가 되었다. 심지어 문명국가의 문명인은 우리와 외모도 다르다. 서구 유럽의 문명인들은 “기상이 활발하고 행동이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외모도 화려하고 어여쁘다.”(최남선) 무엇보다도 서구 여인들은 얼굴뿐만 아니라 옷차림도 아름답다고 판단된다. 서양인의 얼굴을 낯설고 이상하게 바라보던 시선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들을 아름답게 느끼게 된 것이다. 서구 문명인들의 기상과 하려함에 눈을 빼앗기면서, 서양인의 얼굴을 문명의 얼굴로 내면화한 결과인 것이다. 그에 따라 서구문명에 아주 자연스럽게 동화되기 시작하였다. 일제식민지를 거쳐 근대화, 서구화의 가치 아래 재편된 그간의 역사는 그 동화의 급속한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문명인의 얼굴이 아름답다면 비문명인인 당시 조선인의 얼굴은 당연히 추하다. 조선의 전통과 문화는 고리타분하고 야만적이고 미신적이다. 그로부터의 이탈과 탈전통이 당대의 모토였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저마다 문명인의 얼굴을 닮고 싶었다. ‘모던 보이'나 ‘모던 걸'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문명인의 얼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동일화의 욕망이 움트고 문명인에 대한 선망이 시작된 것이 우리의 근대다. 당시 자연스레 서구인의 육체가 이상적인 육체이자 아름다운 육체로 강제되었다. 서구미술이 이상적인 미술이자 예술, 문화와 교양이 되었던 것과 동일하다. 그에 따라 서구인의 얼굴이 조각상으로 재현되었고 서구적 미의 기준이 강요되었다. 그리스조각이 전형으로 습득되었고(석고데생) 서구인의 누드와 착의인 8등신이 관습적으로 그려졌다. 거기에 이상적 미가 숨 쉬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바로 1910년대부터의 일이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도 그다지 달라지진 않아 보인다. 우리는 서구인의 육체와 포즈, 패션과 미감을 내 것으로 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있다.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미술 역시 서구미술의 동경과 모방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 20세기 서구현대미술의 여러 추이와 이전의 전통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수용되고 그 이념이나 문맥보다는 스타일이 우선적으로 패션화되어 받아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서양미술사를 우리 미술사보다 우선적으로 교육받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체화해왔다. 곽승용의 근작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선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는 듯하다.  


곽승용은 에어브러쉬로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서구 여인의 누드를 드로잉 했다. 늘씬하고 섹시하며 아름답고 관능적인 자태를 고혹적으로 드러낸 모습이다. 그 몸은 자신이 수집한 사진들을 참조해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 흑백으로 차분하게 그려져 바탕에 자리한 이미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배우나 모델, 혹은 서구미술사에 등장하는, 미의 기준으로 작동했던 여인들의 벌거벗은 몸(누드)이다. 단색으로 재현된 그 이미지는 사실적인 재현술에 입각해 묘사되었고 바탕에 밀착되어 부감된다. 그 위에 유화로 그려진, 한복을 받쳐 입은 전통적인 조선 여인의 모습을 올려놓았다. 바탕에 자리한 이미지를 덮고 억압하기 보다는 투명하게 그 모든 것을 비춰 보여준다. 부분적으로 그려지고 설채된 상황은 바탕의 드로잉과 기묘한 접점을 마련하면서 부유한다. 흡사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놀이하는 듯하다. 아울러 에어브러쉬의 기계적 발산과 유화의 손 내음이 착종한다. 두 개의 이미지는 떨리고 진동하고 흔들린다. 시선을 고정시키기 어렵다. 경계에서 마구 흔들리는 드로잉과 유화, 여인의 누드와 착의, 서구미인과 조선시대 미인도가, 서구 여배우와 혜원의 미인도가 엉켜있다.  

에어브러쉬의 자취와 유화로 그려놓은 것은 서로가 지속적으로 교호하고 겹친다. 어느 것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부유한다. 아래쪽 이미지와 위쪽에 얹혀진 이미지는 연쇄적으로 물고 물린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정신과 육체, 또는 동양문화와 서양문화 등등의 이분법적 대립구조가 자연스레 부감되게 만든 연출이다. 

 

자신과 타자가 교차하고 서양과 동양문화가 겹쳐서 떠오르는 형국이다. 그 둘은 접목과 이식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절충되고 동거한다. 나름의 접목이 불협화음을 야기하는 형국이다. 그런가하면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이상적인 육체와 미의 기준으로 여겼던 것들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신미경의 비누로 조각한 인물상, 정주영이 단원의 산수화 일부를 유화로 번안한 그림, 박이소의 ‘전통적 미풍', 데비 한의 비너스 사진작업들 역시 동일한 맥락에 위치한 작업들이란 생각이다. 

이 작업은 일종의 탈식민주의적 발상이나 이념이 개입되어 있기도 하고 작가로서 서양미술교육과 문화를 철저히 받고 그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내재화 했던 자신의 현재의 모습과 상황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접점, 기이한 공간과 틈, 모종의 ‘사이의 공간'을 그림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문화적 정체성이란 바로 그 사이에 존재한다. 자신과 타자를 모두 볼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것은 제3의 공간일 것이다. 그곳은 ‘독창성의 신화가 뿌리 내리는 공간이 아니라 차용과 혼성이 대신하는 곳'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곽승용의 그림은 ‘정체의 부동이나 확인이 아니라 정체의 가동성을 말하기 위한 전략' 아래 나온다는 느낌이다. 


서구의 모더니즘 모델이 받아들였던 비서구와 동양에서 모더니즘의 수용과 실천, 그것의 허상적 존재성을 분석해보는 것은 후기 식민시대에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후기 식민주의란 ‘식민 상황의 역사를 지식. 권력, 주체성 등의 문제들을 통해 재인식하는 일종의 철학적. 역사적  담론'이다. 그것은 서구로 대표되는 집단의 문화적 .사회적 . 정치적 우위를 식민지나 기타 지역에서 배제시키거나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창의적 실천이기도 하다. 곽승용이 작업 역시 그런 맥락에서 우리 미술의 지난 역사적 과정을 반추케 하는 동시에 정체성과 탈식민주의적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사이의 공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