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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김현준개인전

금호미술관 3층

이미지로 치환된, 가벼운 흔적

 
글 백곤, 미학

종이 박스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유통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포장 재료이다. 브이제이 특공대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복잡한 유통과정을 카메라에 옮길 때에 상품의 최종단계인 박스 포장은 필수적이며 의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형 마트에 쌓여 있는 종이 박스 역시 낯설지가 않다. 그 만큼 종이 박스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평범한 물질(material)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종이 박스가 작가 김현준에게는 작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김현준은 폐기되거나 재활용 되는 흔한 종이박스를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다른 경로를 통하여 수거한다. 이것이 작품제작의 첫 번째 단계이다. 

그는 수집된 종이박스들에 여러 과정들을 덧입힘으로써 조형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즉, 골판지 상자들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 형상은 크게 소파와 테이블, 핸드백, 슈즈와 같은 소비적 성향이 짙게 묻어 나오는 상품들과 개와 목마, 프라모델 비행기와 같이 작가 개인의 기억에 치우쳐 있는 형상들로 나뉜다. 그는 매우 정교한 콜라주 기법으로 이와 같은 형상을 만드는데, 우레탄 코팅으로 마무리하여 완결성을 높인다. 이제 골판지 상자는 그것의 질료적 물성을 완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완결성을 지닌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된다. 다시 말해 종이박스는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재활용품이라는 고정적인 의미가 아닌 작가의 고유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로 치환된 것이다.

  
김현준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치환된 종이박스에는 사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종이 박스 안의 내용물에 관한 정보들, 그것은 대표적으로 브랜드네임과 브랜드로고와 같이 이동 중에도 소비를 촉진 시키려는 광고효과의 전략적 기호들이다. 이러한 광고의 기호들이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서도 읽혀진다. 그 기호들은 형태를 넘어서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인지되며 기호가 지닌 정보들에 대한 선 이해를 요구한다. 즉, 델(Dell)이나 에이치피(HP)와 같은 브랜드가 읽혀지는 것은 그 브랜드가 어떠한 내용물을 지칭하며, 기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격이라는 경제적 지표까지 먼저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온전히 사회적인 지각과 정보의 이해를 토대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에서 전달되는 시각 기호들은 선 이해된 브랜드의 정보와는 완전히 상이하다. 이러한 다름은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을 낯설게 느끼게 한다. 그것은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의 전복, 상품가치와 순환, 확고와 가변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 층들을 동시에 공유하게 하며, 여러 가지 해석의 틀을 제시한다. 무작위로 콜라주 된 종이 박스에서 평소 알고 있었지만 예상치 않았던 세부 정보들이 눈에 들어올 때의 당혹감과 낯설음이 바로 그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다. 종이 박스에 표기된 내용물의 세부 정보들은 제품명, 회사번호, 바코드번호, 행선지, 용적, 무게, 주의사항과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세부 정보들은 여성의 핸드백과 슈즈에서 보다 극명하게 눈에 띄는데, 콜라주 된 작품의 이미지와 상품이 다시 한 번 충돌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성의 핸드백과 슈즈는 오랫동안 여성성을 상징하는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명품의 상징으로 읽혀진다. 

 

이러한 핸드백과 슈즈는 실제로 사용이 가능해 보일 정도로 견고하게 제작되었으므로, 디자인만 마음에 든다면 제품으로 소유하고픈 충동을 유발한다. 그러나 그 안에 보이는 글자들, 세부 정보들은 핸드백과 슈즈를 소유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와 같이 기호와 상품간의 부딪침이 관객들로 하여금 그 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이것이 바로 낯설음이다. 그것은 마치 명품이라는 소비사회의 상징적 코드가 하찮은 종이박스와 부딪침으로써 물신주의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품과 기호 간의 충돌은 작가의 말대로라면 또 다른 곳에서 한 번 더 미끌어 진다. 

김현준은 작품을 통하여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작품의 의미가 상품의 질료적 치환이나, 칼리그램의 파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흔적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종이박스가 지닌 흔적들을 이미지화시켜 개인의 삶과 기억들에 연결시킨다. 작가가 말하는 흔적이란 소비 사회의 순환하는 유통과정 속에서의 종이박스가 움직인 자국(trace)이며, 이 자국은 단지 상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을 취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것이다. 

 

전혀 다른 타인들이 동일한 상품을 소비하거나 그것을 취한 경험의 공유, 이는 작품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보아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흔적은 은유적이며 유희적이다. 개와 목마, 비행기와 같이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기억에 대한 것들이 이러한 흔적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그것은 상품을 벗어나 단지 이미지로 각인된다. 결국 그의 작업은 이미지의 흔적을 찾는 일이며, 흔적은 상품의 본질에 관한 것으로 귀결된다. 만약 김현준의 말대로 상품이 흘러가는 이미지라면, 그것의 본질은 그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들 즉, 소비자들의 삶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작가가 말하는 상품들이 가지는 흔적의 향유는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과 기억, 행위의 근원을 찾게 하는 것에 있다. 바로 이미지가 그런 역할을 한다. 마치 어린 시절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추억을 떠올리듯이 작가가 만든 형상화 된 이미지가 흔적의 의미를 전달한다. 또한 이미지는 허상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로 대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품은 무한히 확장된다. 

 

그것이 소파이든, 목마이든, 비행기이든 간에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의미 층이 실제 상품이 아니라 상품을 포장하는 종이상자에 머문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흔적이다. 흔적의 공유는 낯설음과 익숙함 간의 충돌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의 가볍지만 의미심장한 종이박스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기억의 공유라는 인식의 틀을 통해, 상품 소비에 대한 로망의 의미를 새롭게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러한 흔적의 의미는 종이박스와 마찬가지로 여러 자국을 남기며 끊임없이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