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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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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영개인전

Color Field - 삶의 창(窓)에서 바라본 풍경들
최 연 희(서울대 미학과 강사, 미학 및 미술이론)  
                                                         
김상영의 세 번째 개인전인 이 전시는 시각적인 조형언어의 차원에서 보자면 서로 다른 두 계열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원이라는 형태의 다양한 색면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추상 계열의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겹 수평의 색면 혹은 색띠와 그 중앙에 그려진 커다란 꽃이나 잎으로 이루어진 반추상적 구상 계열의 작품들이다. 이들 서로 다른 두 계열의 작품을 하나의 전시로 아우르면서 작가가 제시한 타이틀은 《Color Field》이다.
‘색면'(Color Field)이라는 타이틀은 곧바로 1950년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의 한 흐름을 형성했던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연상은 타이틀을 넘어 그림을 통해 실제로 확인된다. 김상영의 동그란 색면들은 붓 터치의 흔적과 음영의 변화, 하얀 캔버스로부터 스며 나오는 듯한 반투명한 색채의 은은한 분위기로 인해 마치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또한 파스텔 색조로 채색된 수평의 색면들은 사상적으로는 로스코 등의 ‘숭고' 이념에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기하학적 추상의 경향을 띤 작업을 했던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의 1970년대 중반 수평선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김상영의 작품들은 표현적 추상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연상은 그녀의 작품들이 로스코와는 달리 원이라는 명확한 기하학적 추상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또 마틴과는 달리 수평의 띠들 중앙에 꽃이나 잎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상이 멈춘 지점에서부터 우리는 새롭게 그녀의 작품들의 의미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로스코와 마틴의 색면 회화가 정신적이고 초월적인 명상을 추구한 것이라면, 김상영의 색면 회화가 표현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탐색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우리는 한 작가의 특정 시기의 작품들이 지닌 의미를 시간적인 궤적 속에서 추적할 필요가 있다. 김상영은 첫 번째 개인전에서 자연 풍경의 모습을 마치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를 연상시키는 밝고 투명한 일차적인 색채와 리드미컬한 붓 터치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개인전 작품들은 파스텔 조의 중간색으로 그어진 수직선이나 사선, 수평과 수직으로 분할된 면들로 구성된 구조, 그리고 그러한 구조 속에 자리한 색면들로 이루어졌다. 그 화면들은 자연이 아닌 도시의 일상적 풍경, 즉 사각의 격자로 이루어진 빌딩 숲과 또 숨가쁜 속도로 이동하는 가운데 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들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김상영의 개인전이 보여주는 이러한 궤적을 통해, 우리는 그녀가 서정적인 풍경―자연의 풍경이건 도시의 풍경이건 간에―을 기하학적 추상의 방법으로 그려내는 화가이며, 또한 기하학적 추상이라는 조형 언어에 있어서 형태보다는 색채―일차적 색채이건 이차적 색채이건 간에―에 의한 화면 구성을 중시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김상영의 이 세 번째 개인전에서의 작품들 역시 서정적인 풍경을 표현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우리의 이 같은 짐작은 작가의 말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그녀는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에 대해 말하면서, 가장 먼저 약 1년 전까지 머물렀던 캐나다에서의 체험을 언급했다. 기하학적 추상 계열의 작품들은 빅토리아만의 바다를 바라보며 지난 삶을 되짚어 보는 시간들이 반영된 것이기에 〈너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 같고, 반추상적 구상 계열의 작품들은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캐나다 사회를 바라보며 그러한 차이를 넘어 서로 맺어질 수 있는 지평으로서의 자연을 꿈꾸었기에 〈피어나기〉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상영의 이번 세 번째 개인전 역시 서정적인 풍경을 색면(Color Field) 추상이라는 조형언어로 형상화한 작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풍경은 이전과는 달리 자연이나 도시의 풍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과 외적 자연이 중첩되고 또한 문화와 자연이 나뉘지 않고 융합된 풍경이다. 다시 말해 삶이라는 총체적 틀, 혹은 창(窓)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언어적 해석이란 것도 ‘시각(visual) 예술 혹은 이미지(image)에 관한 단어(word)들은 언제나 핵심을 비껴간다'라는 비판적인 논의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릇 오늘날은 ‘작가의 죽음'이 운위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객으로서의 우리들은 오로지 캔버스 위에 펼쳐진 색채의 場(Color Field)이 이루는 다양한 스펙트럼 속으로 자유롭게 뛰어들어 각자 저마다의 감동과 느낌을 얻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해서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원들이 캔버스에 스며들거나 도드라지면서 반복되는 가운데 빚어내는 2차적인 색면의 음악적인 울림을 들을 수도 있고, 혹은 미세한 색조의 차이를 품고 있는 수평의 색면들이 만들어내는 평행적인 구조와 그 중심의 꽃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향유할 수도 있다. 또한 원이라는 원형적인(primitive) 형태를 통해 존재론적인 그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며, 수평의 선들을 통해 모든 존재를 품는 광활한 대지나 바다라는 근원적 자연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예술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김상영의 색면들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끌어내는 것 역시 결국은 ‘보는 이'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