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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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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연개인전

오브제와 조형,그 자연과의 동행 


화가들에게는 누구나 그들만이 좋아하는 은밀한 어떤 것이 있다. 어떤 화가는 특정한 오브제를 좋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화가는 특별한 형태나 특정한 색채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작가의 개별적인 취향은 예외 없이 작품에 등장하여 그의 회화에 특성을 말해주거나 그림의 성격과 방향을 말해준다. 
여류작가로선 드물게 70년 첫 개인전부터 지속적으로 작업을 해온 곽연의 경우는 오브제에 특별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초기에 그의 세계는 주변 환경을 통해서 자연의 세계를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왔다. 그렇다고 자연풍경을 그대로 읽어내는 자연주의 화풍은 아니고 오히려 꽃이라든가 정물을 아주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표현이나 기법이 아니라 그가 사용하고 있는 재료, 특히 바탕이다. 으레 캔버스이거나 하드 보드이기가 보통인데 그는 이미 10여년 전 이전부터 아크릴 박스나 종이박스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왜 그는 다른 작가들이 사용하지 않는 바탕에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
그는  오래전 1989년 어느 여성신문에서 생활주변에 넘쳐나는 쓰레기나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즉 그는 넘쳐나는 비닐이나 박스 ,케이크 박스 ,우유곽등을 무심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이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고 나타나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러고 보면 그는 폐자재의 미술작품 활용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곽연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정크아트로 불리기 쉬운 이러한 작업양식은 곧 그의 오브제 작품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러한 그의 화면은 좀 더 다양한 패턴과 형식으로 만들어갔으며, 결국에는 그러한 오브제들이 화폭 속에 직접적으로 붙여지면서 그의  회화 양식은 피카소나 슈비터스 같은 작가에게서 보이는 콜라주 풍의 회화로 진행되었다.  
그의 이러한 통일된 인식은 그를 점점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을 예술 속에 끌어 들이는 따뜻한 시선으로 향하게 했다. 초기의 여성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꽃그림 화풍에서 벗어나 그는 보다 개념적인 자연의 모습을 자신의 감성으로 구성해 나갔다. 그런 자연의 이미지는 다분히 구성적이며 관념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의 양식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러한 오브제에 마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여주듯이 화폭 속에 나란히 재현 해 보였다.   
즉 새로운 삶의 태어남은 생명의 모습으로 전환되어 구성의 형상을 가지며 나타난다. 자연을 바라다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은 섬진강의 여름으로 화폭에서는 더욱 이지적으로 세련되게 부활한다. 
이처럼 그의 회화에서 자연은 회화의 중심축이 되어 곽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밀레나 고흐처럼 그에게도 자연은 예술의 원천이자 고향인 셈이다. 그는 주변 환경의 오브제나 사물을 통해서 더욱 순수한 조형의 세계로 현재까지 도달해왔다. 그 가운데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품에 나타난 특징적인 하나의 오브제가 둥그렇고 일정한 크기로 나타나는 커피 필터이다. 
이 둥그렇고 일정한 크기의 형상은 다름 아닌 커피를 마시고 난 후의 종이필터인데 그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화면 속에 접착 시킨다.  그는 이 종이 필터를  화면에 붙이면서 그의 작품에 콜라주 패턴의 양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단조롭고 정형적인 형태로 그가 의도하는 것은 그 커피 필터가 만들어 내는 자연적인 모습과 이미지들이다. 이 종이필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작품 속에서 어떠한 회화적 기능을 하는지는 명료하지 않지만 화면에 중요한 조형적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작가는 이 종이 필터를 통하여 자연을 생각하고 그 오브제 차용이야 말로 근본적으로 자연을 생각하는 근본적인 마음으로 보여진다.  
이것이 비록 커피를 걸러내고 난 후 쓰레기 통으로 가야 할 보잘것없는 폐품에 불과하지만 곽연에게 오면 이 종이필터는 자연을 생각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화가의 직접적인 메시지로 되살아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최근작에서 보여지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환경에의 깊은 사색과 고려는 그의 회화에 정신적인 세계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색채에의 하모니를 화면 곳곳에서 결합 시킨다. 종이 필터에서 보여지는 색채와 자연스러움 ,그들이 만들어내는 조형성은 그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인지되고 있다. 그는 강렬한 메시지보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그 부드러움과 조용함 그리고 그것을 향한 자신의 예술의지가 자연스럽게 조화되길 희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둥근형태와 풍부하고 다양한 형태와 색채가 만들어 내는  구성은 절대적 공간속에서 조용한 화음을 던져준다. 그의 이 화음들은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서 아름답게 태어난다. 
결코 튀지 않으면서 각자의 색들이 만나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자연과의 만남,  이 자연과 함께 늘 따뜻한 시선으로 동행하고 있는 것 ,그것이 곽연에게 주어진 예술적 소명이자 화가의 철학임을 지향한다.    


김종근 (미술평론가.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