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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라유슬 개인전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 라유슬 개인전에 부쳐  //  장우인 (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

   “새로운 천국을 건설한 사람은 누구나 먼저 자신의 지옥에서 필요한 힘을 얻었다”
                                                  -니체 (Friedrich W. Nietzsche)

홍대 앞 술집에서 처음 라유슬 작가를 만난 때만해도 그녀는 맑고 경쾌한 소리를 냈고, 그녀의 그림은 반짝였다. 누구보다도 감각적으로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스스로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감미롭게 생동하는 음률의 파장을 색으로 담아내었다. 불과 일 년 사이에 다시 만난 그녀는 짙은 보라색으로 이동 중인 듯이 보였다. 적어도 내가 그 색에 대하여 고귀한 삶의 끝과 같은 깊은 신뢰를 갖고 있는 한에 있어서 말이다. 지금 그녀는 이전보다 무게 있고 짙은 소리를 내고, 새로운 그림들은 엄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색의 파동은 마치 음률처럼 화폭을 지배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아름다운 미세한 떨림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그녀의 변화는 지속되어 온 것이겠지만 이번 전시를 기하여 한 사람으로써,  무엇보다 작가로써 한 단계 도약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 일 년 사이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작가와 작품 그리고 관객의 시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작가의 숙명에 대한 존재론적 고뇌는 분명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스스로는 이번 전시 제목이자 미사 음악에 주로 쓰이는 용어인 ‘Solemnis(장엄하게 연주하라)'가 내포하고 있듯 안식을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과 변화는 오롯이 작품에의 전념을 통한 비상(飛上)으로 나타날 듯하다.

‘장엄하다'는 단어는 마치 영웅처럼 찬란하고, 위엄을 가지고 있어 그 앞에 선 개인을 한없이 작게 만든다. 미사 음악의 장엄함은 위대한 신 앞에서 자신을 털어버리고 마음의 안식을 갖도록 해준다. 라유슬 작가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이번 전시 작품의 주된 모티브인 날개와 뱀에 담아내었다. 뱀은 허물을 벗는 고통을 지나 안식을 찾고, 거대한 날개는 평안을 향해 날아가도록 해준다. 그러나 이런 안식은 단순히 심신의 안락이나 정체(停滯)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성장이고, 도약이며, 성숙의 단계이다. 뱀은 탈피를 하지 못하면 몸이 자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비늘이 단단히 굳어버리고 결국 피부가 찢어져 죽고 만다. 라유슬 작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녀는 지금의 고뇌가 안식을 바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안식은 또 다른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다. 끈적끈적한 작가의 피가 흐르기에 탈피의 고통을 통하여 성장할지언정, 붓을 놓는 순간의 안락은 택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허물을 벗고 있는 뱀의 고통에 찬 괴성에 ‘Sing(노래하다)'이라는 제목을 붙여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저 거대한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는 것은 아닐까. 

니체의 말대로라면 지금 라유슬 작가는 자신만의 새로운 천국을 건설 중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단 날개가 결코 이카루스의 날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