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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하용주 전 - 금호영아티스트

금호미술관 지하1층 하용주의 2006년 작품 를 보자. 첫인상은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림을 좀더 주시하고 있자면 곧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소 그을린 피부를 가진 깡마른 여자가 손에 담배를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 어떻게 마스크를 쓰고 담배를 피울 수 있을까? 매우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거기에 노란색 옷과 노란색 배경의 대비가 눈에 띤다. 게다가 흰 머리카락, 흰 담배, 흰 손톱, 흰 발톱 그리고 유심히 관찰해야 알 수 있는 여자의 흰 팬티까지. 은근히 색채로 리듬감을 강조한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이다. 이와 비슷한 경향으로 여겨지는 가 이번 전시에 출품되었다. 검붉은 피부, 파란 눈동자, 하얀 마스크, 검은 옷 등이 어우러져 이국적이면서도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역시 방독면을 착용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울 수 없지만, 이 그림에서는 오히려 담배 연기가 상당히 자욱하다. 이처럼 하용주에게 있어 ‘가스마스크'는 중요하다.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가스마스크이며, 대다수 작품제목도 가스마스크이며, 이전 개인전 명칭도 가스마스크였다. 그만큼 가스마스크는 하용주 작업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가스마스크는 어떤 물건이고,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먼저 가스마스크는 우리가 얼핏 알듯이, 독가스, 세균, 방사성 물질 등이 호흡기관에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얼굴을 보호하는 기구이다. 가스마스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가스를 방어하기 위해 군용으로 개발되었으며, 이후 화생방전이 대두되면서 그 기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방독면은 항상 전시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탄광과 공장에서도 필요하게 되었고, 나아가 소방관과 경찰관에게도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더불어 유사시를 대비해 공공장소와 여러 가정에서 가스마스크를 비치할 정도로 이제는 그 쓰임새가 너무도 다양해졌다. 하용주는 가스마스크에 관심을 가진 이유에 대해, “장난감 피겨(figure)를 좋아하고 모았다. 그 중 어떤 피겨가 방독면을 쓰고 있었는데, 굉장히 답답해 보였으며, 마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상황이 단지 그 피겨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들에게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 현대인들에게 가스마스크는 단순히 자신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기구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모든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가스마스크를 쓰고 각박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심리적 가스마스크를 쓰고 타인과 관계하고 사물을 재해석한다. 그것은 자기방어일 수 있으며, 그러한 현실로부터 단절되고 도피함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가스마스크는 일종의 필터 혹은 구원이다. 또한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한편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춘다는 것, 즉 익명화를 뜻하며, 다른 한편으로 동일한 표정을 가진다는 것, 즉 획일화를 지칭한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태어나,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마치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듯이. 에는 여러 사람들이 방독면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있다. 불길한 기운을 암시하듯 주황색이 화면을 뒤덮은 가운데 이들은 어디론가 질주하고 있다. 핵폭탄이 터져 가스마스크를 착용하고 절망적으로 도망치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새로운 터전을 향해 희망차게 나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절망과 희망이 교묘하게 교차한다. 하용주 그림에서 가스마스크와 함께 주목되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폭탄'이다. 이 폭탄들은 가스마스크를 쓰고 바라본 세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방독면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분명 평상시보다는 급박하고 위급할 것이다. 물론 가스마스크를 쓰고 세상을 대하는 느낌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하용주는 이 불안한 감정을 폭탄에 연결시켰다. 는 수많은 폭탄들이 땅에 떨어지는 충격적인 현실을 담고 있다. 이 폭탄들이 모두 터진다면 어떠하겠는가. 하지만 그 폭탄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폭탄의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르며, 폭탄을 비교적 코믹하게 묘사하여 마치 장난감 폭탄처럼 보인다. 아주 위험한 물건이지만, 폭탄 본연의 의미를 벗어나는 탈주가 있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와 같이 상반된 이미지들을 중첩시킴으로써 경직된 해석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사진가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 렌즈 안에 사물을 담고, 그 렌즈로 사람들과 만난다. 하용주는 가스마스크라는 자신만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 가스마스크로 사물과 대면하며, 그 가스마스크로 사람들과 만난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침투하여 서로 소통하고자 한다. -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모든 나에게 해로운 나쁜 것을 제거할 수 있으며, 주위에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걸어간다. 나에게 표정이 있어도 누구도 나의 표정을 바라볼 수 없다. 더구나 모든 사람이 그렇다면 누구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작가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