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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치유의 풍경

박희섭은 동양적인 재료인 나전과 한지, 자연 염료를 이용하여 회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그의 작품의 주재료가 나전이라는 것은 특기할 만 하다. 나전(조개의 껍질)은 동양에서 공예품에 장식적으로 사용되어 우리에게는 장식장, 교자상 등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재료이다. 박희섭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대신에 가늘게 자른 나전을 붙여나감으로써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자개는 시간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 장인적 기술을 요하는 재료이기에 과거의 장인들처럼 이를 이용한 박희섭의 작업 또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집약하고 있다. 자개를 가늘고 세밀하게 붙여나가는 작업 외에도 이 자개들이 붙는 화폭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된다. 들기름을 여러 번 바른 한지를 2년 정도 묵힌 뒤, 이 한지에 다시 오방 색(적, 황, 청, 백, 먹색)의 분채 가루를 섞어 바탕색을 칠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화폭 위에 다시 자신이 직접 자른 자개를 길고 짧게 아교로 붙여가며, 이미지를 하나하나 만들어간다. 자개 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나가는 긴 과정은 마치 오랜 시간 바닷속에 만들어진 자개의 오색영롱함이 주는 시간의 흔적과도 같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박희섭의 풍경은 얼핏 보면 색 면 바탕 위에 나무나 식물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척추와 오장 등 인체의 기관들의 형상들이다. 박희섭은 땅에 나무가 있듯이 풍경에 인체의 척추를 대치시켜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즉, 전통재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동양정신에 대한 것으로 주제와도 연결된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모든 인간의 관심사이기도 한 장생(長生)을 화두로 삼고 평면과 입체 설치를 통해 십장생을 형상으로 구현했다. 다음 전시에서 그의 관심은 인체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였고, 이번 전시에서는 장생의 개념에서 치유의 기능까지 감지해 내고자 한다. 박희섭은 이러한 인체를 표현하면서 오행의 법칙을 이용하였다. 분홍과 연두 바탕 위에 척추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풍경들 외의 이미지들은 각각 오방 색을 바탕으로 그 색에 따른 장기의 이미지들이 형상화하였다. ‘목'은 푸른 풍경, ‘화'는 붉은 풍경, ‘토'는 노란 풍경, ‘금'은 흰 풍경, ‘수'는 검은 풍경으로, 그리고 이들 오방 색에 그려진 자개 이미지들은 각각 간, 심장, 위, 폐, 신장 등의 신체 기관의 형상을 띄고 있으며, 이들 색은 각각의 기관의 치유의 색으로 상징된다. 자개로 덮힌 화면은 무한한 빛과 율동감이 내재되어 있으며, 수공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회화적 화면 앞에서 영원성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