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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풍경의 표면

송명진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마치 꿈이나 환상의 세계에 있는 풍경, 사물, 인간들이 일러스트레이션처럼 표현된 듯 하다.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에는 하나의 색-작가의 작품은 거의 하나의 색이 캔버스의 표면을 덮고 있는데, 불투명 녹색(opaque oxide of chromium)-의 표면이 마치 색면 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저 불투명한 녹색의 표면이 아니라 일종의 형체를 가지고 있다. 무질서하게 포개져있는 녹색 무리처럼 보이는 이 형체들은 일러스트레이션 기법과 형상을 응결된 상태로 묘사하는 작가만의 표현법으로 특수성을 가지게 된 것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작가의 첫 개인전(보다 갤러리, 2001)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였다. 작가는 첫 개인전에서는 변화무쌍하지만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사물, 풍경 - 예를 들면 새가 날아가는 순간, 구름이 피어나는 순간,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의 풍경 - 에 견고하고 지속적인 형태를 부여하고 그 순간을 기념비(모뉴멘트)화였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움직임이 없는 고요한 일종의 ‘정물'로 탈바꿈하며, 원래의 풍경의 자리(맥락)는 표백되고 몽타주된 풍경(정물)들은 이제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섬처럼 부유한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의 송명진 그림에는 아침 산책에서 늘 지나치는 개천길, 여름날 푸르른 식물들, 교각 아래 번지는 무성한 초지 등 주변에 존재하는 녹색 식물들의 풍경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현재 작가의 작업실 일대의 풍경들이다. 작가는 이 일상의 풍경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것들을 화폭에 옮긴다. 녹색의 풍경들을 평면에서 조각하듯 3차원으로 입체화시키고, 전체적으로 균질한 색상으로 다시 2차원으로 평면화시킨다. 즉 작가는 사물 혹은 풍경을 동일한 색채만으로 변주하며, 평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익숙한 풍경들을 낯설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의 낯설음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더 들여다보게 하고, 심지어 관람자의 상상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하나의 색면 추상과도 같은 그의 작품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만의 응축된 구체적인 풍경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인물들이 등장하는 풍경에서는 관람자는 구체적인 스토리를 추리하게 만든다. 즉 송명진 그림의 힘은 작가만의 이야기를 캔버스로 옮겨왔지만, 관람자가 단순히 관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