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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The Space of Blessing

회화란 일정한 평면에 환영을 주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2차원에서 3차원의 세계로 시선과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기이한 공간의 연출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망막에 호소하는 바닥없는 구멍이자 우리 몸의 감각기관에 지속적으로 접속하며 나아가는 저 ' 먼 곳'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현실에서 피안으로 순간 이동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김주혜의 화면은 그 같은 회화의 공간감을 적극적으로 시각화한 자취다. 언어로 망명되기 어려운 핵채를 흠뻑 안은 바탕 면과 그 위로 시간과 마음들이 지나간 듯한 흔적, 그리고 생명체나 종교적 상징으로 응고된 자취들이 부유한다. 사물의 크기나 구체적 공간의 원근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평면적인 화면에 공간의 깊이를 부여하고 있다. 이 평면의 화면은 마음이나 내면의 피부, 아득한 깊이를 보여주고 주름이나 파문, 야릇한 덩어리나 원형이미지들은 모종의 생명체를 표상하고 잇다. 푸른 창공의 별자리나 양수 속의 태아. 수중에 자리한 이름모를 생명체 같은 것들이 연상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세포들의 운동을 연상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너무 크고 아주 작은 세계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평면 혹은 몇 개로 잇대어진 화면들은 하늘이나 물 속, 혹은 양수 속 공간의 연출이며 그 안에 생명체를 상징하는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작가에게 이 화면은 우선적으로 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화면 자체가 물이 되고자 한 것, 물을 머금고 있는 용기처럼 다가온다. 이 물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동양적이며 기독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동양사유릐 키워드는 물이다. 물은 우주자연의 순환하는 이치와 섭리를 표상하는 존재이며 인간 존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지를 은유한다. 또한 창세기에 의하면 태초에 물이 갈라져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초의 공간이 생겨났다고 한다. 궁창이란 히브리말로 '광활한 공간'또는 '펼쳐진 땅', '공간'을 의미한다. 인간이 양수 속에 온전히 잠겨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듯이. 지구위의 모든 생명체가 궁창이 위로 올라가 막을 형성한 오존층으로 인해 생존할 수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 자리하는 사실이다. 궁창, 물, 양수와 같은 공간을 평면의 화면 위에 올려놓은 일은 자기 감각과 느낌에 의존해서 연출된다. 작가의 화면은 깊이감과 막막함, 공간감의 극대화에 겨냥되어 칠해지고 마감되어 있다. 시선에 호소하는 한편 매우 촉각적인 표면을 보여준다. 이 화면은 또 다른 공간, 또 다른세계로 유인한다. 작가는 여러 색들을 섞고 혼합해서 자신의 감각과 기호에 맞는 생삭의 '발명'에 섬세한 신경을 기울인다. 그렇게 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하나의 색이 탄생한다. 사실 우리들의 눈이 판독할 수 있는 색상의 수가 800만 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이는 결국 우리가 색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언어의 그물망과 문자의 체계 밖에서 색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에 의해 판독되고 이해될 뿐이다. 화가란 존재는 그 무수한 색채의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신의 감각에 의해 판독된 색채를 화면위에 온전히 현존시키고 물리적 싳레로서 자리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존재들이다. 작가란 존재는 결국 자기 색을 가지고 말하는 존재다. 그 색으로 인해 우리는 한 작가의 모든 것을 가늠한다. 김주혜 역시 자신이 선호하는 색, 자기 작업의 주제를 시각화하는 색, 깊이가 있으며 무한한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한편 어떤 색이라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색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 색은 다른 색체들을 한껏 머금고 있으며 단일한 색채로 귀결되지 않는 색이다. 오로지 자신의 느낌과 감각에 의존해서 살아난 색이다. 결국 이 색은 자기만으 색이고 자기 감수성, 감각, 기회와 취향을 전적으로 색으로 대변해서 알려주는 그런 상징적인 색이다. 눈으로 보니 못하고 드러나지 않는 세계, 공간을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는 그런 색을 상상한 것이다. 붉은 색 계통의 색은 인간, 피, 생명을 상징하는가 하면 녹색계열은 자연이나 식물, 또한 푸른색조로 칠해진 화면은 하늘이나 물, 양수 들을 시각화한 색상이다. 전체적으로 은회색, 푸르스름한 빛깔, 잿빛이나 선홍빛 등이 감도는 중성적이고 무채색계열로 잦아든 색감은 깊이감과 공간감을 마냥 자극한다. 애매하면서도 고급한 세련미로 적셔진 색채는 명상적이며 심리적 여운을 발산시키는 한편 화면 너머로 시선, 마음들을 이동시킨다. 이 색채의 바다에 약간씩의 덩어리들이 떠돌거나 일정한 패턴으로 이루어진 결이 파문처럼 놓여져 있거나 투명하게 베일링 된 연출을 보여준다, 베일링은 아련한 잔상이나 몽환적 분위기., 신비스럽고 매혹적인 공간을 고조시키며 여러겹, 여러 시간의 층자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겹은 시간의 두터운 층을 말한다. 지난 시간과 지금의 시간,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의식이 교차하고 있으며 이쪽과 저쪽으 공간감, 이곳과 저것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런 시간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들의 자취가 김주혜의 그림이다. 아크릴에 보조제를 섞어 반투명의 느낌이 나도록 하고 밑 작업이 드러나게 겹쳐 바른 효과역시 물의 속성, 분위기를 만드는 시각적 장치들이다. 아울러 캔버스 전체를 보다 세련되게 다루기 위해 폭이 긴 도고(나이프. 스퀴즈, 판 등)로 효과를 내고 있다. 예를 들어 스퀴즈로 밀로 지나간 자취, 로울러및 닦아내고 덧칠한 여러 시간의 경과와 생명체의 자취들이 각인되어 있다. 넓고 막막한 화면에 놓인 그것들은 미세하게 회면에 파장을 일으킨다.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거나 지시하기 보다느 유동적인 상황, 흐룸 시간의 이동, 숨격이나 파문, 바람이나 호흡 같은 것의 형상화에 가까워보인다. 그것은 캔버스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연혹하여 움직이면서 모호한 공간을 자아낸다. 그 화면의 중앙 부분에 형상에 부유하거나 내려앉아있다. 사실 이 그림은 망막에 호소하면서도 망막 너머의 세계로 정신적인 유인을 촉매 하는 그림이다. 그것은 우리의 눈이 보기 어려운 세계, 눈으로 볼 수없는 세계로 나가게 하는 징검다리 같은 그림이다. 부득이 그림은 시각을 매개로 해서 그 너머로 가야 한다. 눈이 가닿을 수 없어 마음과 감각이 헤아리는 세계를 누으로 인도하는 그림이란 모든 회화가 지닌 가장 불경스러운 욕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고갈되지 않는, 고갈될 수 없는 회화만의 매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