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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줄서기

우종택은 지난 개인전까지 줄곧 삶에 대한 일관된 작업을 선보였다. 노인들 혹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줄 서있는 사람들 비롯해서 주위에서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간상을 담아왔다. 첫 번째 개인전에서 그는 ‘인생의 역정'을 그리고자 했고, 이를 노인들의 표정 속에서 찾았다. 그는 노인들의 표정 속에서 고독한 인간의 삶과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고 한다. 이후 개인전에서 작가는 줄서기라는 주제로 현대인의 삶을 담아왔다. 버스를 타기위해서, 식사를 하기위해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표를 살 때, 그리고 직장에서 승진을 기다릴 때 등 현대인의 삶이 끊임없는 줄서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줄서기야말로 현대인의 삶을 집약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줄서기'라는 주제를 통해서 바라본 우리사회의 다양한 풍경들을 담고 있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줄서기'에는 보이는 줄서기와 보이지 않는 줄서기가 존재한다고 본다. 우종택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보이는 줄서기란 순차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줄서기는 우리의 원죄적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줄서기'는 구체적이기보다는 형상성, 형상성보다는 표현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우종택의 작품은 얼핏보면 일반 수묵화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판화기법으로 작업됐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붓선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칼이 지나간 선(線)의 느낌들이 강렬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우선 그는 밀리는 인파 속에서든 어디에서든 이리저리 부대끼면 우리 주위의 인물들과 풍경을 크로키한다. 이러한 스케치들을 목판이나 우드락 등의 소재에 옮기고, 이들 틀판에 모양을 새긴 후, 먹을 발라 찍어낸다. 이렇게 찍어낸 화선지에다 부분적으로 먹의 갈필이 더하여진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탁본 기법이 아니라, ‘탁본수묵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탁본에서 나타나는 먹의 범람은 그의 그림 속 인물의 삶에 대한 응시의 깊이로, 먹의 마르고 거친 갈필들은 인물들의 주름 속 상처를 나타내기에 적합하다. 또한 판화 기법에서 느낄 수 있는 음영의 대비효과는 화면을 더욱 극적으로 고조시키고 있다. 그의 작업기법들은 거칠고 힘겨운 삶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