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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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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은미 개인전

채은미의 작품은 황금의 색면회화(Gold Color-Field Painting)와 입체작품 형식을 따르고 있다. 황금의 색면회화(Gold Color-Field Painting)는 언뜻 보기에 광택 있는 안료를 사용한 듯이 보이는 작품들은 보면 볼수록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빛의 파장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작품의 표면을 덮고 있는 재료 자체가 그 이전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용된 적이 없는, 순금위에 red, blue, pink, green, beige 등의 천연 안료를 섞어 만든 새로운 금박채색재료이기 때문이다. 채은미는 한정된 몇몇 물질을 제외하고는 다른 재료와의 결합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 황금의 속성과 천연안료를 결합하여 발광(發光)하는 색면을 만들어 내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천연 옻을 접착제로 사용하는데 옻을 테레핀과 린시드 용액에 용해시킨 후 이를 금성분과 결합하고 그것을 화면위에 견고하게 고착시키는 방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달성된 자신만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을 통해 채은미는 자신의 조형적 실험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연금술적 성과를 거두었다. 한 화면에 한 가지 색조만을 사용한 그림들은 각각의 색이 지닌 발색의 특성에 따라 열정의 red, 순수의 blue와 같이 서로 다른 감각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이 미묘한 반응들은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작은 단위의 색면들이 기계적으로 짜 맞춰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호흡에 따라 조금씩 배치를 달리 함으로써 자연스러우면서도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독특한 발색을 지니고 있는 채은미의 색면회화들은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의 파장을 전달한다. 채은미의 두 번째 시도는 입체작품에서 나타난다. 2002년 금호미술관 전시에서 소개된 바 있는 의 발전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3.5)x(3.5x( 4.5)cm의 사출방식으로 도금된 입방체들을 한 바탕위에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는 입체작품을 제작하였다. 이 작업에서 특이한 점은 바탕면의 처리인데, 순수한 황금색과 color-field에서 얻어진 색면을 격자무늬처럼 엇갈리게 배치하고 그 위에 입방체의 단위를 얹어 놓은 방식이다. 이 작품은 비교적 단순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효과를 창출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거리낄 것 없이 매끈한 표면을 지닌 동일한 단위의 입방체들은 미니멀 아트를 연상시키고 화면의 상하좌우 또는 대각선으로 흐르는 색면의 바탕위에 놓여진 입방체가 보여주는 색과빛의 반향들은 옵티컬 아트의 한 국면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제작 동기는 오히려 의외의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아기자기하게 나누어진 전통보자기의 면 분할과 바느질을 통해 도드라진 입체적 질감에 착안하여 이와 같은 구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여성적 감수성과 자신이 오랜 시간 다뤄 온 황금이라는 재질이 만났을 때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에 대한 실험적 욕구가 이 작품으로 귀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속이라는 차가운 물질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바탕의 색에 따라 여러 가지 정서적 반응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green은 순수한 자연의 영감, pink는 따뜻한 여성적 공간을 암시하는 듯하다. 바탕의 색면을 조심스럽게 조율하고 작은 단위를 일일이 부착시켜야 하는 어려운 제작 과정과 많은 시간의 소요 때문에 이번 전시에서는 몇몇 작품만을 만날 수 있지만 앞으로 보다 큰 스케일 그리고 보다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채은미는 1폭이 160x60cm 인 8폭짜리 병풍, 즉 전장길이 480cm의 대형 작품을 제작하여 전시한다. 이 작품은 이전 전시의 황금색 회화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마치 19세기말 일본 화단을 풍미했던 림파(琳派)의 장식적인 황금병풍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간결하고 절제된 색감이 동양의 전통적 형식에 있지만 황금색의 사각형을 집적하여 고도의 추상성을 건져 올리는 현대적 조형감각을 보여준다. 채은미는 지금까지 설명한 새롭게 실험된 신작들을 두개의 방에 나누어 전시함으로써 보다 선명하게 자신의 조형의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첫 번째 방은 ‘황금의 방'으로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황금의 병풍를 중심으로 이와 어우러진 황금색의 단색조 회화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걸어볼 수 있도록 코팅 처리한 황금의 길을 만들어 황금이라는 절대 순수의 입자에 둘러싸인 명상의 공간을 유도하고자 한다. 두 번째 방은 이와 상반되는 분위기로 연출된 ‘색면의 방'이다. 이 방은 채은미가 창안해 낸 색상의 색면회화로 구성되는데 앞선 방과는 달리 각각의 그림들이 발산하는 색과 빛의 진동으로 ‘정중동'의 느낌을 전달한다. 작가 채은미가 갖고 있는 장점중 하나는 자신의 작업을 언제나 진행형의 과정으로서 인식하고 있으며 각각의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의식 또는 조형적 과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황금이라는 소재를 단지 재료의 해석이라는 차원에 놓아두었거나 그 절대적 성격에 매몰되어 조형적 표현의 한가지 종결로서 머물게 하였다면 더 이상의 조형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 채은미는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자신이 채택한 조형적 방식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고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때 신중하면서도 진지하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기대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